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 외무장관이 멕시코 주재 대사에게 비밀 전문을 보냈다. “미국이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멕시코에 동맹을 제의한다. 멕시코가 미국과 전쟁해 빼앗긴 텍사스·애리조나 등 영토를 회복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아메리카 패권을 건드리겠다는 독일 발상에 참전을 결정한다.
2차 대전 초 영국 처칠이 SOS를 쳤는데도 미국은 미지근하게 반응했다. 오히려 미국 기업들은 독일·일본과 현금 거래를 하며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나치가 유럽을 석권하고, 일제가 중국·동남아까지 세력을 키우자 미국 전략가들 생각이 달라졌다. 나치와 일제의 패권화를 치명적 위협으로 봤다. 일제가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국은 1·2차 대전으로 패권국이 됐다. 여느 패권국처럼 경쟁국에는 냉혹하고 한 치도 양보가 없다. 함께 싸운 미국 루스벨트와 소련 스탈린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모스크바의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은 1946년 소련 봉쇄를 주장하는 ‘롱 텔레그램(긴 전문)’을 워싱턴에 보냈다. 냉전이 본격화했다. 미국은 소련을 무너뜨리고자, 혐오하던 중국 공산당과도 손을 잡았다. 고립된 소련은 붕괴했다.
미국이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용인한 것은 미국 질서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과거처럼 자기들이 패권국이 되려 했다. 2013년 시진핑이 돌연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주일 미군 사격장도 일방적으로 포함했다. 중국이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건드린 것이다. 시진핑은 “태평양은 미·중이 공존하기에 충분히 넓다”고 했다. 미국은 기존 패권을 반분하자는 말로 이해했다. 역사상 패권을 스스로 잘라준 세력은 없다.
미 전략가들은 1·2차 대전, 냉전 때처럼 움직였다. 국무부는 2020년 중국 봉쇄를 담은 ‘롱 텔레그램’을 준비했다. 지금 미국의 전략 목표물은 중국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화·민주 차이도 없다. 반중(反中)을 위해 바이든은 동맹을 설득하고, 트럼프는 압박한다는 차이 정도다. 미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12일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의 회담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푸틴을 끌어당기려는 것도 결국은 중국 견제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탄핵 국면에서 미국 조야는 야권이 대통령 1차 탄핵 소추안에 “대통령이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폈다”는 내용을 넣은 것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측근은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을 언급했다.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을 벌써 우려하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작년 총선 때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라고 말한 뒤 손을 맞잡는 동작을 하며 “(중국에) 그냥 셰셰(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국장급인 주한 중국 대사 옆에 앉아 “미국 승리, 중국 패배에 베팅은 잘못”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미·중이 공존을 모색할 때는 한국의 전략적 공간이 있었다.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균형 외교’도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중국과 전쟁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한국 조선업의 협력을 왜 콕 찍어 강조했겠나. 군사력에서 미국의 유일한 열세가 군함 보유 규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안보·경제 라인은 전부 대중 강경파다. 북핵 문제도 대중 견제 카드로 쓸 가능성이 있다. 패권국은 어설픈 동맹의 손을 잡고 전쟁하지 않는다. ‘미국에도 셰셰, 중국에도 셰셰’ 하는 나라는 어느 쪽에서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트럼프 취임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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