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사 와 살게 된 곳 가까이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다. 그곳엔 나라가 주권을 상실했다 회복했던 고난의 시기에 독립운동을 해서 더 고달픈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록이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밤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 외벽에 독립지사들의 광복 의지를 빛으로 표현한 미디어사파드 '빛의 항거'가 전시되고 있다. 2022.8.14/뉴스1

어릴 적엔 전래동화처럼 심상하게 들어 넘겼던 독립투사 이야기에 머리가 굵어진 후 언제부턴가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백성을 보호할 군사력도 먹여 살릴 경제력도 없는 나라, 무능한 왕조와 부패한 벼슬아치의 나라를 지키려다가 고초를 겪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은 사람들의 결단이 의아했다. 내가 만일 그 시절에 살았다면 독립운동하자고 꼬실 것 같은 지인과 안 마주치려고 길을 멀리 돌아다녔을 텐데 그들은 왜 그랬을까.

김훈 소설가의 신작 ‘하얼빈’은 “썩은 왕조의 탐학으로 껍질만 남은 조선 민중이 무너져가는 왕조를 치열하게 옹위”한 이야기다.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 거사를 도모했던 우덕순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지방 토호의 아들이었고 교육자였던 안중근과 달리 우덕순은 “극빈의 하층민”이었다. 그를 수사한 일본 검찰관이 이런 “하층 불량배에게 정치사상이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정신의 용력이 있다”는 걸 인정 못 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라에서 받은 거 없이 뜯기고 시달리기만 했을 우덕순 같은 이들은 왜 나라를 구하려 나섰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구하려던 것이 가렴주구와 학정을 일삼던 왕조와 지배계급이 아니라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의 세계사적 폭력과 야만성에 침탈당하지 않을 권리, 억압당하지 않고 평화로울 권리라는 ‘대의’를 들고서 우덕순은 채가구역으로, 안중근은 하얼빈역으로 총을 들고 갔을 것이다.

내 한 몸의 안전을 공동체나 대의를 위해 절대 포기 못 할 나 같은 소인배와 우덕순 사이의 아득한 괴리감을 좁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용기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는 선택에 신중하리라는 자세다. 독립운동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로워진 나라에서 무명의 독립투사들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혜택을 받아 누린 엘리트 정치인들은 국민을 받들어 위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자격 있는 이를 가려내 권력을 맡기려 했던 노심초사 선택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새 정부가 이루어야 할 노동, 연금, 교육 분야 개혁은 갈 길이 멀고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의 악순환에 대한 불안이 시시각각 밀려오는 이 시기에 집권당도 야당도 실망만 준다. 이들은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에 관심은 있는가. 한국 정치의 새 바람이라고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젊은 당대표는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린다는 사생결단으로 소속 정당과 대통령을 들이받는다. 집권당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당대표발 가처분 소송에 맞서 마치 쌓았다가 허무는 모래성인 양 비대위 설치와 해체를 반복한다. 야당은 더 심하다. 사법 리스크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걸려 있는 당대표를 철통 방어하는 것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궤변 아래 똘똘 뭉친 모습엔 정치 혐오만 생긴다.

안중근과 우덕순, 가진 것 없는 두 청춘이 총 한 자루만 들고 하얼빈과 채가구로 떠나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할 만큼 부강해진 나라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건만 국민의 몫을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권력자의 말이 내로남불인지 적반하장인지 밝은 눈으로 알아보고 정치의 폭력에 수탈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어쩌겠는가. 정치인들 이전투구가 신물 나지만 더욱 눈을 크게 뜰 수밖에. 누구에게 권력을 줄 것인지 신중한 감시로 우리가 우리를 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