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 보유수를 크게 늘려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목표를 추진 중이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북핵이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수동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훨씬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제8차 노동당 대회가 열리는 내년 1월까지 대외 행보는 없다고 사실상 선언한 가운데, “비핵화가 완전히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3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북한이 심각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200~300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목표를 추진 중”이라며 “이는 억제용 수준을 크게 벗어나, 역내 패권국(regional hegemon)이 되려는데 있다”고 했다. 베넷 연구원은 “핵 역량을 갖춰야 주변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마치 ‘고구려 왕조’와 같은 지위를 꿈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북한은) 미국을 협상에 임하게 할 정도의 핵무력 국가로 인정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고자 한다면 이는 핵 협상이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리 연구원은 “북한의 최종적인 관심사는 옛 소련과 같은 핵 강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군축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이미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의 핵무력 국가로 등극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유예시키면서 ‘핵 동결’과 같은 중간 단계의 합의를 모색하는게 현실적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한미 당국이 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의 추구가 어려워진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차기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 과제는 지금의 ‘모라토리엄’,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유예를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