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25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시신 훼손 사건과 관련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오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오전 북측 통지문을 수령하자 곧바로 이를 들고 직접 청와대에 들어갔고,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이를 계기로 두 차례나 브리핑을 열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이 오늘 오전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통지문을 받자마자 박 원장이 이를 들고 청와대에 들어갔다”며 “오전 10시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군의날 기념행사가 있었던 만큼 이른 아침부터 청와대로 향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지문 처리 방향을 논의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통지문 전문 공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 실장은 오후 2시에 통지문 전문을 공개했다. 덧붙여서 이달 들어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친서까지 교환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취재진이 친서 내용을 묻자 서 실장은 2시간 후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친서 전문까지 공개했다. 정부가 북한의 통지문과 남북 정상 간 친서 내용을 전부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날 북한의 만행을 공개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정부가 김정은의 통지문을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25일 긴급 소집된 국회 정보위에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이덕훈 기자

서 실장은 통지문을 공개하면서 “우리가 북에 공식적으로 요구한 사항에 신속하게 답신을 보내온 것으로서, 사태 발생 경위에 대한 북측의 설명, 우리 국민에 대한 사과와 유감 표명, 재발 방지 내용 등을 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 직후 북측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는데, 북측이 이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는 것이다. 서 실장은 북한이 통지문에서 우리 군을 비난한 데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박지원 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 “(이번 사살이) 김정은 위원장이 지시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 등 간부 지시로 움직이지 않았나 판단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몰랐다는 취지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신속하게, 또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북의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처럼 빠르고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며 사과한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책보다 평화를 강조했다. 서 실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화 용의와 호의, 인내심이 약해지지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평화적 접근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평화를 만드는 미래 국군의 모습을 선보여 드릴 것”이라며 ‘평화’를 네 차례 언급했다. 서 장관은 공무원 사살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사건 진상에 대한 남북의 설명이 다른 상황에서 북한에 서둘러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김정은의 진정성 없는 사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