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해 서방 망명설이 돌았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해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북한의 대사급 외교관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조성길은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 비서 이후 한국행을 택한 최고위급 인사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2018년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가운데)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같은 해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한 모습./AP 연합뉴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성길 전 대사는 작년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실무 외교관의 남한행은 간간이 있어왔지만, 북한의 대사급 인사가 한국에 들어온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정보 당국은 "신변 보호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해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조 전 대사대리는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재작년 11월 10일, 임기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부인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당시 잠적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등 외국 정부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제3국으로 망명을 타진 중일 가능성이 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1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취임한 이래 처음 있는 재외공관장의 탈북이었다.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소식이 알려지자 한때 한국에선 보수 진영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 전 대사 가족의 한국행을 추진하는 단체도 결성됐다. 먼저 탈북해 있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전 주영국 공사)은 지난해 1월 조 전 대사대리를 향해 “내 친구 성길아! 서울로 오라”며 공개 편지를 쓰기도 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행적이 묘연하자 그의 행방을 두고 여러 설이 난무했다. 제3국 도피설, 미국 또는 영국 망명설, 잠적 과정에서 5개국 정보기관 개입설, 북한 특수요원 체포설 등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뤘다.

이런 가운데 올해 4월엔 미국에 기반을 둔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조 전 대사대리의 탈북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유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일가를 구출해 제3국으로 보낸 조직으로 유명세를 탔다.

조 전 대사대리는 2006~2009년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덕에 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했고, 유엔 제재로 문정남 주이탈리아 대사가 추방당한 뒤 대사대리를 맡을 정도로 실무 능력을 인정 받는 인사였다고 평가받는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부친이 과거 노동당에서 조직 관리 역할을 맡은 적이 있고 이 때문에 그가 북한 내 고위 인사들에 대한 남다른 정보를 축적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2월엔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 전 대사대리의 미성년 딸이 북한으로 송환된 사실을 공식 확인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