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총재

더불어민주당은 16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총재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밝히자 “정부 정책에 훈수를 두겠다는 것이냐”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한은이 너무 소극적이다”며 맹공을 쏟아부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성 막말’까지 나왔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 “재정준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 질문에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현재 상황에서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장기 전망을 보면 건전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위기에서 회복됐을 때를 생각하면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한은이 정부 정책에 훈수를 두는 건가”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에 나온 배우 이영애의 대사를 거론한 것이다. 같은 당 정일영 의원도 “재정준칙 발언을 왜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한은 본연의 직접적인 업무는 아니잖나”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총재가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취재진에게 엄격한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문제 삼았다. 당시 이 총재는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빨라 연금이나 의료비 등 의무 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엄격한 준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총재가 재정준칙 도입에 부정적인 민주당 입장과 다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정감사장에서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양경숙 의원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엄격한 재정준칙이 동시에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인지, 이런 민감한 시기에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독립기관인 한은 총재까지 나서서 논란과 분란을 일으키는 데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했다. 정일영 의원은 “(코로나로) 굉장히 불확실한 시대인데, 굳이 재정준칙을 지금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고 보느냐"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여당 의원들도 이 총재 난타전에 가담했다. 박홍근 의원은 “다른 나라들을 보면 중앙은행이 준재정 정책 역할을 한다”며 “한은이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한은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광재 의원은 “(한은이) 미국처럼 고용 안정도 업무의 한 영역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홍익표 의원은 “한은에서 통화정책을 재정 당국과 협조해서, 경제에 풀리는 돈이 실물 경제로 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여당 의원들의 파상적인 질타가 이어졌지만 이 총재는 “이건 제 개인 주장이 아니라 모든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총재는 “재정준칙을 언급할 때 무조건 엄격해야 한다고 한마디만 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위기 요인이 해소된다면 평상시 준칙은 좀 엄격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 총재를 두둔했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이 총재가) 많이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며 “한은이 계속 독립적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고 했다. 박형수 의원도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