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제국주의의 침략 확장을 억제했다”며 북한의 남침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우리 정부는 침묵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 참전으로 6·25 전쟁 기간 희생된 국군 전사자는 13만7899명에 달한다.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16개 전투 지원국 등 22국(國)으로 구성된 유엔군도 참전해 약 4만명이 전사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날 시 주석 발언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23일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인영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 주석 발언에 관한 입장을 묻는 의원들 질의에 “그것은 중국의 시각”이라면서도 “제가 장관으로서 ‘적절하다' '아니다’ 평가하는 건 외교적 관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의 거듭된 요구에도 이 장관은 “중국 정상 발언에 대해 국무위원으로 평가하는 게 외교 관례가 아니다” “우리가 시 주석의 역사적 평가에 동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계속 거부했다. 여당 소속인 송영길 외통위원장 역시 “우리 입장에서 어렵고 곤궁한 상황인데 다 같이 한반도 전쟁을 막고 평화의 시대를 만들자”며 즉답을 회피했다.

외교부도 이날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외교부는 전날 이재웅 부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면서도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외교부는 이달 초 방탄소년단(BTS)이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중국 내에서 비판받을 때도 “양국 유대감 증진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만 했다.

전문가들은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정부가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전략성 모호성’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안보는 한·미 동맹, 경제는 포용’이라는 대원칙은 세운 상태지만 미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다자안보협의체 ‘쿼드(Quad)’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전직 외교부 간부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외 정책 원칙을 시급히 정립하지 않으면 미·중 양쪽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