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 임직원이 타고 중국에 들어가는 전세기 2편의 운항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한·중 양국이 합의해 지난 5월부터 도입한 ‘한·중 기업인 입국절차간소화 제도(패스트트랙)’를 사전 통보나 협조 요청 없이 일방적으로 깬 것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해외 유입 코로나 확진자 증가에 따른 것”이라며 중국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의 대(對)중국 외교가 부당한 조치에 정당한 항의도 하지 못하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와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오는 13일 중국 시안·톈진으로 떠날 예정이던 전세기 2편이 이번 주 초 중국 민항국의 일방적인 불허 조치로 운항이 취소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전세기로 이용하고 있는데, 대한항공 측에서 ‘코로나 때문인지 중국 민항국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비행기엔 삼성전자와 계열사, 협력업체 임직원 200여 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
한·중 양국은 지난 5월부터 필수적인 경제 활동 보장을 위해 기업인 패스트트랙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와 TV 공장이 있는 시안·톈진 공항 2곳을 지정해 삼성 전세기 입항을 허가하고 기업인이 중국 도착 후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으면 28일간의 격리를 면제해줬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1만명이 이 제도를 통해 중국에 입국했다. 그런데 중국이 이번에 한국 정부나 기업 측에 사전 통보를 하거나 협조 요청도 하지 않은 채 전세기 운항을 일방적으로 불허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외교부는 이날 중국에 항의하거나 유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외교부는 오후에 발표한 공식 입장에서 “최근 중국 내 해외 유입 확진자가 증가함에 따라 중국 측은 국적을 불문하고 기업인 여부에도 관계없이 중국행 모든 입국자에 대해 검역 강화 조치를 시행했다”고 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이런 조치들이 한·중 신속 입국 제도에 대한 완전한 폐지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계속 중국 당국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코로나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3월, 일본이 우리 국민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했을 때는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 일본대사를 곧바로 초치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사전 통보도 없이 조치를 강행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비우호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며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중국의 삼성 전세기 일방 불허 조치에 보인 태도와는 대비된다.
외교가에선 “현 정부의 ‘외교 공중증(恐中症)’이 심각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항미원조(抗美援朝) 70주년 기념식 발언을 시작으로 중국 내에서 북한의 6·25 남침을 왜곡하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을 때도 정부는 논평 하나 내지 않았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달 양국이 ‘사드 3불(不)’ 합의를 달성했다며 주권 침해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을 때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정부의 이런 ‘대중국 저자세’ 기조는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에 입국하는 우리 국민은 자비 40만원을 들여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은 무료로 코로나 검사를 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검역 절차는 외교적 상호주의보다 상대 국가의 위험도와 방역 조치의 경제성, 행정적 여건 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사항”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