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일부터 나흘간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했다. 지난달 청와대가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11월 중 방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지만, 미 대선 이후 처음 있는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만 차례로 찾은 것이다. 미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가 미·북 대화 재개가 아닌 ‘반중(反中) 캠페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 국무부는 23일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동남아 2국 방문에 대해 “양자 관계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한편, 지역 안보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동남아 지역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순방 내내 중국에 대한 공세를 고리로 결속력을 다졌다.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가장 빈번하게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22일 베트남 외교아카데미 강연에서 “중국은 자기 호수처럼 남중국해를 소유한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면서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또 같은 날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과 동영상 서비스 ‘틱톡’에 대해선 “이러한 앱을 금지하는 대통령의 권한이 결국 시행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행정부가 바뀌더라도 이러한 금지는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방미(訪美) 결과를 설명하며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서훈 실장의 요청에 따라 다음 달 중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 일각에선 오브라이언이 “내년 도쿄올림픽이 미·북 협상 기회”라고 밝힌 것을 들어 그의 방한을 미·북 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패배 이후 그의 방한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막상 베트남과 필리핀은 나흘에 걸쳐 방문한 것이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달 한국 방문을 취소한 뒤 인도 등 동남·남부아 4국을 방문해 ‘한국 패싱(배제)’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