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訪韓) 조건으로 ‘코로나의 완전한 통제’를 내걸었다. 국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500명을 돌파하면서 재유행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 관련 여건이 성숙해지면 방한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한 것이다.
왕 부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장관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 양측이 해야 하는 것은 방문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방문의 여건’을 구체적으로 묻는 질문에 자신이 쓴 마스크를 가리키면서 코로나19가 통제돼야 한다고 했다.
왕 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시 주석의 한국 국빈 방문을 따뜻하게 초청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이것은 한국 측의 중·한관계에 대한 높은 중시, 그리고 중·한관계를 심화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북경을 방문했지만, 이에 대한 시 주석의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왕 부장은 이번 한국 방문을 미·중 갈등 속에서 바라보는 외교가 일부 시각에 대해 “이 세계는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세계에 190여개 나라가 있고 이 나라는 모두 다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나라”라며 “중·한도 포함됐다. 양국은 가까운 이웃으로서 친척처럼 자주 왕래하고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왕 부장은 그러면서도 한·중 양국이 “방역 협력, 경제 무역 협력, 지역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협력, 한반도 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력,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중·한 FTA(자유무역협정) 2단계 협상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도 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공조와 다자주의 복원을 공언한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편 왕 부장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회담에 20분 늦은 10시24분쯤 외교부 청사에 도착해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측에서 개인 사정을 들어 9시40분쯤 늦을 것 같다는 양해를 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왕 부장은 지각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트래픽(교통 체증)”이라고 했지만, 숙소인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부터 외교부 청사까지 15~20분 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해 12월 방한 당시에도 각계 인사 100여명을 초청한 오찬 모임에 40분 가까이 늦어 참석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왕 부장은 이날 강 장관과의 오찬을 시작으로 여권 핵심인사들과 줄줄이 회동한다. 오늘 오후에는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밤에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을 함께한다. 왕 부장의 방한에 의전 서열 1·2위인 문 대통령, 박병석 국회의장을 필두로 당·정·청 핵심인사들이 총 출동하는 모양새를 두고 과잉 의전과 저자세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