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달려왔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지율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년 9월 26일 공표된 데일리안-알앤써치 여론조사에서 13.2%의 지지도를 기록하며 처음 대선주자 1위로 떠오른 이 대표는 이후에도 줄곧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20%대 초반을 넘어서지 못했다. 얼마 전 같은 기관이 수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22.5%에 머물렀다. 그러는 사이 윤석열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 경쟁 상대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지지율 순위가 어느덧 2~3위권으로 밀려났고, 내년 3월 9일까지인 당대표 임기(대선 출마 가정 시)는 절반이 지나버렸다.
자꾸 엉키는 현안 메시지
조급함 때문인지 이 대표는 최근 현안에 대해 내놓는 메시지가 연달아 엉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국정조사 관련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윤석열 총장 혐의는 충격적”이라며 “국회에서 국정조사하는 방안을 당에서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평소 ‘엄중낙연’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중한 이 대표가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을 쓰며 나서자 정치권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당장 국민의힘이 “수용하겠다”며 나서고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나오자 이 대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앞서 전세 대란과 관련해서도 ‘호텔 전월세’를 언급하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해 성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와 부동산 대란, 검찰개혁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이 대표가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는 주간조선에 “현재 전체적으로 정국이 상당히 어수선하다”며 “코로나19도 확진이 늘어나고 국회에서는 진영 간 갈등이 첨예하다. 특히 검찰개혁과 관련해 잡음이 너무 큰 가운데 이 대표로서는 성과를 확실히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여당에 표를 몰아준 만큼 당대표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이낙연 대표가 지난번 대통령과 독대할 때 개각 관련해서 김현미 장관과 추미애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는데 대통령이 안 된다 한 것 같다”며 “이 대표는 김현미 장관이랑 원래도 불편한 데다 부동산이 계속 문제가 돼 지지율을 깎아먹는데 이도 저도 못 하니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좀처럼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가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면할 시간이 줄어 정무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통상 정치인들은 만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격리되거나 확진 판정을 받을 확률도 일반인에 비해 높지만 이 대표는 유독 자가격리 기간이 긴 편이다. 이낙연 의원실에 따르면 이 대표는 올해 코로나19 검사만 총 다섯 번 받았고, 2주짜리 자가격리도 최근까지 두 번이나 있었다. 지난 8월 전당대회 때도 이 대표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신의 당대표 선출 과정을 자택에서 지켜봐야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확진자와 밀접접촉을 한 경우 방역당국에서 연락이 오고 검사를 받는데 (이 대표는) 선제적으로 받으신 경향이 있다”고 했다. 최근 윤 총장 관련 국정조사 얘기를 꺼냈던 때도 자가격리 기간이었다.
“자기만의 색깔과 비전이 없다”
이 대표가 최근 던진 일련의 ‘자충수’들은 결국 이 대표가 당내 주류인 친문 직계가 아니라는 원천적 한계에서 기인한다는 해석이 많다. 민주당 한 권리당원은 “이낙연은 이개호 의원을 빼면 세력도 불명확하고 친문이 맞는지도 애매하다”며 “(이 대표가) 일을 꼼꼼히 챙기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엄격한 걸로 유명해 당내에서도 우호 세력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최근 ‘친문 적자’로 통하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적 앞날이 불투명해졌지만 그렇다고 친문 세력이 이 대표 쪽으로 넘어오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최근 연달아 친문 당원들을 향한 구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당원 게시판에 올린 편지글에서 “검찰개혁은 공수처 출범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가정보원법과 경찰청법 등 권력기관 개혁입법과 내년도 예산안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했다. ‘친문 직계’가 아닌 이 대표가 당내 주류인 친문 세력에 직접 구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3 후보론’을 언급하고 나선 친문의 행보도 이 대표로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는 두 분(이낙연 민주당 대표·이재명 경기지사)이 경쟁을 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가 온다면 제2, 제3, 제4의 후보가 등장해서 경쟁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만약에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대선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그동안 지지율 1위를 달렸어도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역시 차기주자로서 정치적 분수령을 내년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로 꼽는데, 만약 이 선거에서 지면 재기가 어려울 만큼의 타격을 입는다는 설명이다. 당내 친문 모임인 이른바 ‘부엉이 모임’(최근 ‘민주주의 4.0연구원’으로 확장) 멤버인 홍 의원은 유력한 차기 당권 후보로 꼽힌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이낙연 대표의 근본적 약점은 그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김형준 교수는 “차기 대권후보는 자기 색깔이 명확해야 하는데 자기 색깔이 없다는 게 이 대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확한 자신만의 색깔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너무 신중한 자세를 취하다 보니 자신만의 비전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이 대표의 총리 시절 ‘사이다 발언’이란 것도 엄밀히 따지면 야당 비판이지 자기 비전을 내세운 건 없었다”며 “대통령 지지도가 높을 땐 좋았지만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면 같이 지지도가 떨어지는 동인화(同人化)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이건 대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이라고 말했다. 3월이면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자기 비전과 당내 세력이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당내 주류인 친문 세력의 마음을 사기 위한 성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박시영 대표도 “최근 스텝이 엉키는 모습보다 중요한 건 이낙연만의 색깔, 노선, 비전을 대중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된다면 뭘 바꿀 건지, 나라를 어떻게 바꿀 건지 자신의 비전을 대중한테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쟁자인 이재명 지사의 경우 관료들을 어떻게 대할지, 주요 정책의 핵심 골자가 뭔지 굵직한 것들이 보이는데 이 대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이 대표가 대선주자로 더 크기 위해서는 결국 이낙연표 핵심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