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오전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의 ‘투 톱’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7일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과오(過誤)에 대한 사과 문제로 충돌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당 회의에서 4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인 9일 “(두 전직 대통령 문제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는 행사를 갖겠다”고 재차 밝혔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전부터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지금 이 시점에 사과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여당이 공수처법을 일방 통과시키려 하는 상황에서 당내 단합에 장애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먼저 사과하고 비대위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내부 반발로 지금까지 미뤄왔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계획대로 사과할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일부 비대위원은 “당의 변화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고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와 가까운 배현진 원내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권 탄생 그 자체부터 사과해야 맞지 않는가”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과거 이력을 비판한 것이다.

당내에선 영남과 전 정권 관료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과에 대한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수처법 국회 본회의 처리를 두고 여야 충돌이 예상되는 9일 대신 8일 또는 10일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두운 과거 털어야 당 회생”… “섣부른 사과, 잃을게 더 많다”

[이래서 찬성] 비대위와 수도권·충청권 의원

“중도·3040에 달라진 모습을” “김종인 말고 누가 매듭짓겠나”

“대국민 사과를 못 하면 비상대책위원장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7일 비공개로 진행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당 쇄신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들은 “당내 일각에서 부정적 목소리가 표출되는 상황에서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비대위원들과 수도권·충청권 의원 대부분이 김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 당이 변했다는 모습을 보이기 원한다면 결국 (등 돌린 민심에) 진정성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견(異見)을 표출하자, 비대위원인 성일종 의원은 김 위원장을 공개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오전 열린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성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10년간 집권했음에도 문재인 정권의 패악질을 막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때 우리는 중도층, 2030세대(현재 3040세대)의 지지를 받고 집권했는데, 이분들이 이제는 우리 당에 등을 돌리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떠나간 집토끼’가 되어버린 지지자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도 이날 회의에서 “우리가 여전히 3040세대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일부 원내 인사는 편한 지역구에서 당선되셔서 잘 모르겠지만 수도권 민심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둘러싼 원내 사정을 감안해 오는 8~10일 사이 대국민사과에 나서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탄핵 사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1년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당이 만든 총선 백서에 참패 원인으로 ‘탄핵 사태에 대한 당 차원의 반성이 없었다’고 명시된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정양석 사무총장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패에 몰린 당이 회생(回生)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초선 의원도 “우리가 절대 사과하지 않는 여당의 대척점에 선다면 대비 효과가 명확히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대국민 사과를 찬성하는 당 구성원들은 “전직 대통령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사람도 김종인 말고는 없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채(負債)가 없고, 전통적 지지층 반발에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 사과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는 ‘어두운 과거와 단절’을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래서 반대] TK 의원들 “지지층 민심 흔들려”

유보파 “타이밍 좀더 고민해야” 강경파는 “민주당 2중대냐” 반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에 대해 대구·경북(TK) 지역 의원 상당수는 우려를 표시했다. 김 위원장이 사과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지금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지역구 주민들의 민심 이반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대구 지역 한 의원은 “김 위원장 혼자 독단적인 결정으로 당을 이끌 순 없다”면서 “현 정권의잘못과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과거를 들먹여서 좋을 게 뭐가 있느냐”고 했다.

부산 지역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발은 나온다. 최근 부산 시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친박계 5선 서병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탄핵의 강'은 언젠가는 넘어가야 할 숙명이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과만이 탄핵의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다”라면서 “지금은 (사과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형식과 타이밍을 좀 더 고민하자는 ‘유보파’도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간 여러 차례 김 위원장에게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우리 당에 대해 낙인찍을 빌미만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있으니 고민해달라”고 말해왔다. 7일 비공개 비대위 회의에서도 주 원내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지금 사과하는 건 공수처법 처리와 보궐 선거 시기를 감안할 때 당내 단합에 장애로 작용하고 잃을 것이 더 많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일부 비대위원과 비례대표 의원 사이에서도 “추미애·윤석열 정국이 워낙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어서 섣부르게 사과를 해도 뉴스가 묻힐까 걱정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비대위원은 “1~2주만 미루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이에 “(사과 시기를) 더 늦추면 진정성이 희석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김 위원장 사과에 가장 거세게 반대하는 ‘강경 반대파’다. 홍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는 더불어민주당 2중대로 가는 굴종의 길일 뿐”이라며 “(사과를) 강행하는 건 5공 정권하에 민정당 2중대로 들어가자는 이민우(전 신민당 총재) 구상과 흡사해 보인다”고 했다.

‘홍준표 키즈’로 불렸던 배현진 의원은 “이미 옥에 갇혀 죽을 때까지 나올까 말까 한 기억 가물한 두 전직 대통령보다 굳이 뜬금포 사과를 하겠다면 문재인 정권 탄생 그 자체부터 사과해주셔야 맞지 않는가”라고 했다. 홍 의원 당 대표 시절 수석대변인을 지낸 장제원 의원도 “민주당 폭주를 막는 데 당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면서 “비대위원장이 당의 분열만 조장하는 섣부른 사과 논란을 벌이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