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회에서 이른바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비판 여론이 쇄도하고 있다. 전·현직 관료, 석학과 싱크탱크 종사자, 국제인권단체, 한반도 전문가 등이 모두 이번 법안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향후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뒤 박병석 국회의장이 감사 인사를 하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에도 처리를 강행한 법안은 전단 살포 등으로 남북합의서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대북 전단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자 정부와 여당 주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10시간 넘게 국회 본회의에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했다.태의원은 이법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만 좋은 법이며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막아 영원한 노예로 만드는 법이라고 했다.

◇美 각계에서 비판 쇄도

미 국무부 전·현직 관료들은 이법 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14일(현지 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북한 주민들의 고립을 강화할 뿐”이라고 했다. 앞서 샘 브라운백 종교자유 담당 대사, 모르스 단 국제형사사법 대사 등 국무부 고위 관료들도 “이런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잘못” “문제가 심각하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번 법안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학계에서도 우려의 뜻을 표시했다. 그렉 스칼라튜 미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극히 제한된 정보 유입 수단의 일부를 금지시키는 건 미래의 남북 통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한국 정부는 남북 대화 재개의 길을 열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 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추진을 비판한 크리스 스미스 미 연방 하원의원. /크리스 스미스 홈페이지

미국의 북한 분석가로 지난 2017년 ‘액세스 DPRK’라는 지도를 제작한 제이콥 보글은 트위터에서 “반(反)인권적인 법을 가지고 폭정(tyranny)과 싸우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평양이 서울을 상대로 힘자랑을 한 것”이라며 “대북 전단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담화를 통해 전단을 비난했던 김여정 등 북한 지도부가 향후 더 강도높은 요구를 해올 것이란 뜻으로 해석됐다.

미국 밖에서도 비판 의견이 쇄도했다. 영국 리즈대의 한반도 전문가인 아이단 포스터카터 박사는 “수치러운 날(a shameful day)”라고 했다. 네덜란드 레이든대의 렘코 브루커 한국학과 교수도 “아주 우려스러운 전개”라고 했다.

◇바이든 시대 한미 관계에도 악영향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8일(현지시간)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마련된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보건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팀의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부·여당의 이번 법안 조치가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대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시나 그레이텐스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이번 조치가 남한의 가장 큰 자산인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치는 일인지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바이든이 추진하는 가치 기반 파트너십을 추구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도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같은 가치에 기반한 동맹국 공조를 추구하는 바이든의 전선에서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미국 정치권에선 이번 조치에 대해 ‘한국을 국무부 워치리스트(감시 대상)’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크리스 스미스 연방 하원의원(뉴저지주)은 최근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와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미 하원 외교위원회 간사인 마이클 맥카울 의원도 14일 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핵심가치”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라이츠파운데이션(HRF) 측은 유엔 등 국제 사회에 한국 정부를 제소해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