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난 ‘전쟁둥이’가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1억원을 기부했다. 6·25 의미를 되새기고 해외에 생존해 있는 유엔군 참전 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들이 그의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 12월 제주도에서 태어나 현재는 감귤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성진(70)씨는 최근 한국전쟁기념재단(이사장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과 국제구호개발단체 월드투게더(회장 엄기학 전 육군 3군사령관)를 통해 에티오피아의 생존 참전 용사 118명에게 30만원씩 총 3500여만원 위로금을 보냈다. 태국과 필리핀의 생존 참전 용사들에게도 조만간 기부금을 보낼 예정이다.
1억원은 27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아내의 사망 보상금 4600만원을 불린 돈이라고 한다. 강씨의 아내는 결혼 생활 16년 만인 1991년, 오토바이를 타고 과수원으로 일하러 가던 중 버스에 치여 즉사했다. 그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죽음이었다”고 했다. 이후 아내의 과실(過失)을 주장하는 버스 회사를 상대로 지난한 법적 투쟁을 거쳐 사망 보상금 4600만원을 받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강씨는 “가족의 목숨과 바꾼 돈이라 꼭 의미 있고 고귀한 일에 써야 했다”고 했다. 두 자녀에게도 “이 돈만큼은 절대 함부로 쓸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자율 높은 통장을 찾아가며 특별 관리했고 올해 액수가 1억원까지 붇자 기부를 결심했다. 기부처를 알아보던 중 해외의 생존 6·25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지 보도를 접하고 “이들을 위해 돈을 쓴다면 아내도 박수를 쳐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6·25 70주년 기념 사업을 총괄하는 국가보훈처를 비롯해 국방부, 외교부 등 정부 기관들은 그의 도움 요청에 “우리 소관이 아니다” “성금 받을 근거가 없다” “장관 결재까지 받고 상대국 협조를 구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강씨는 “융통성을 발휘해 좋은 사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업무를 떠넘겼다”며 “내가 악성 민원인도 아니고, 선한 의지에서 시작한 일인데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국가보훈처와 외교부 등은 이에 대해 “기부금법 등에 따라 성금을 받을 근거가 없고, 민간의 기부처는 충분한 안내를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씨는 결국 기부처를 찾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지난 11월 민간 단체를 통해 뜻을 이뤘다. 그동안 대한적십자사부터 유명 인사가 대표로 있는 복지 재단까지 수십여 곳에 전화를 돌리고, 상경(上京)까지 해가며 기부처를 알아보던 노력 끝에 얻은 결과였다.
강씨는 “남침이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흐려질 정도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6·25가 잊히고, 중국의 왜곡에도 우리 정부가 한마디 반박도 못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참전 용사들에게 직접 쓴 편지에서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당신들은 나의 영웅”이라며 “제가 지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두 손을 꼭 잡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했다.
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참전 용사들을 향해서는 “후세들이 참전 용사의 큰 희생에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면 여러분은 우리 마음에 언제나 살아 계신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