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일 “야권 단일 후보로 정권의 폭주를 멈추겠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안 대표는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며 현 여권을 도왔고, 민주당은 ‘안철수 현상'을 흡수하며 수권(受權)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안 대표는 9년 만에 정반대편에서 ‘정권 심판을 위한 출마’에 나선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안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은 하나 마나이며,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본인의 양보가 박 전 시장의 3선(選)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 집권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도한 정권 심장에 직접 심판의 비수를 꽂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야권 후보로 나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고 2014년 민주당과 합당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는 등 현 여권의 주요 인사였다. 2016년 국민의당 창당 이후로는 현 정권 주류인 친문(親文) 진영과 대립했지만 ‘중도’ ‘제3 지대'로 야권 분열 책임론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서울시장 출마보다는 대선 3수에 무게를 뒀던 안 대표는 이날 야권 단일 후보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야권 통합 논의에 불을 댕겼다. 안 대표는 내년 보궐선거 의미를 “정권 교체를 위한 7부(분) 능선”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제가 앞장서 7부 능선까지 다리를 놓겠다”고 했다.

안 대표는 작년 조국 일가 비리 의혹을 시작으로 추미애 장관, 집값 폭등, 코로나 백신 확보 난맥상 등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의 적, 독재 정권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2022년 대선 불출마도 함께 선언한 것이다. 안 대표는 기자들 질문에도 “대선은 포기하지만 선거에서 이기고 좋은 시정(市政)을 통해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정치 참여 여부가 미지수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외하곤 야권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선두를 다퉜던 안 대표가 중도 이탈하면서 2022년 대선 구도 역시 요동치게 됐다.

안 대표는 “야권 단일 후보로 당당히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도 했다. 21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하는 제1 야당 국민의힘을 향해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것이다. 안 대표는 “가장 중요한 목표인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해야 하고 단일 후보로 맞서 싸워야만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공식 반응을 자제했지만 내부에선 “문재인 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하거나 통합해 단일 후보를 세우는 게 옳다”는 반응이 나왔다. 만약 국민의힘과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한때 ‘극중주의(極中主義)’까지 주장했던 안 대표가 중도와 제3 지대 중심 정치철학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 의원 정수 축소 등을 주장하는 ‘새 정치’를 내세웠고, 민주당과 합당·탈당을 거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국민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에도 온건한 중도·실용 노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는 정부의 각종 정책과 노선을 맹렬히 비판하며 강경론자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진보·보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안 대표 신념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안 대표는 현 정권의 코로나 대응을 비판하면서 “저, 의사 안철수가 코로나19 확산, 빠른 시일 내에 확실히 잡겠다”며 “방역의 주역인 의료진과 국민의 협조 속에 방역 체계를 완비하고 충분한 의료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주거의 꿈을 되살리고 세금 폭탄은 저지할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주거복지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의 시정과 보궐선거 원인이 된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음흉한 범죄와 폭력의 공간이었던 서울시청 6층(시장 집무실)을 열린 행정의 새로운 공간으로 확 뜯어고치겠다”며 “시정을 사유한 세력에 책임을 묻고 시민을 속이는 정치를 샅샅이 찾아내 뿌리 뽑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