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의 사과가 진심이라면 제대로 된 후속 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라며 “국정철학과 스타일 모두가 바뀌어야 하고, 그 첫걸음은 인적 쇄신이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노무현 정부에서는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평가위원장을 지낸 진보 성향 지식인이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중민재단 이사장)가 2020년 9월 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중민재단 사무실에서 최보식 전문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법원이 윤 총장 2개월 직무정지 징계가 부당하고 결론 내자 빠르게 사과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대통령이 나선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 사과가 진정성이 없고 일종의 국면 전환용이라면 그 효과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추미애 법무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이 1년 넘게 지속돼 왔는데.

“현 정권은 제도 장악을 통한 통제와 ‘문빠’라는 장외 지지 세력 조직화, 이 두축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왔다. 여기에 기대 상대적으로 야권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민 상식과 합의를 파괴해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와 매우 닮아있다.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등 고위직 인사들을 친여권 인사로 포진시키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윤 총장 손을 들어준 이번 법원 결정을 보면 권력을 휘둘러도 상식을 누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간단한 사회가 아니다. 집권층은 이제 권력 중독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에 대한 평가는.

“국정 목표라는 건 국민 공감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검찰 개혁이란 이름만 개혁이지 조직화된 힘으로 그냥 밀어붙이기다. 원래 개혁 진보 세력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국정 방향을 함께 고민해 수정해나가고 국민과 대화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집권층은 상대를 비난하고 악마화시키는 양극단의 방식을 택해왔다. 전혀 문제가 풀릴 수가 없다. 깨어있고 상식이 있는 시민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현 정권의 문제점은 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여러 차례 과거 정부의 전철를 절대 밟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었다.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도 “열린우리당이 승리에 취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때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했었다. 노무현 정부는 높은 지지율을 받았지만 멋진 정치를 하지 못하고 이념에 사로잡혀서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정 등 한쪽 방향으로만 갔다. 뼈아픈 악몽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방식으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제언한다면.

“이제는 문재인 청와대가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를 놓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철학과 스타일이 전부 변해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이 정권 핵심으로 채워진 586운동권의 체질이나 문 대통령 성향으로 봤을 때 과연 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다만 잘못돼 온 것들을 바로잡을 노력만 한다면 아직 문 대통령에게는 기회가 있다. 레임덕을 피하면서 쇄신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국정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하고, 그 첫 단추는 인사가 돼야 할 것이다.”

-인적 쇄신의 방향은.

“광범위하게 해야 한다. 우선 추미애 법무장관부터 물러나야 한다. 더 나아가서 청와대를 이끌고 있는 핵심 요직을 균형 있고 국민 상식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교체해야 한다. 위기 국면을 잘 돌파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돈을 준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 비해 성장세가 좀 낫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정부의 지원 덕이었다. 이 상황도 반전을 하려면 좀 더 새로운 인물, 상식과 전문성 갖춘 인력으로 바꿔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면서 통합을 이뤄나가야 더 이상 ‘쇼통’이라는 말이 안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