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전직 대통령 특별사면과 관련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선별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조선일보DB

여권 핵심 관계자는 “두 대통령을 동시에 사면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을 먼저 한 뒤 이 전 대통령은 사면이 아닌 형 집행정지 등 다른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국민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이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혐의로 4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했고, 이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및 횡령 등 개인 비리 문제인 데다 중간에 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이 박 전 대통령 우선 사면을 검토하는 것은 이낙연 대표의 사면 제기 이후 친문 지지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되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통령에 관해서는 대통령 권한인 사면이 아닌 법무부 소관의 형 집행정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과 관련해선 어떤 입장도 없다”며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2017년 3월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 수수 혐의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오는 14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형이 확정되면 사면 요건을 갖춘다. 이 전 대통령은 횡령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3월 구속된 뒤 석방됐다가 형 확정 후 다시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고, 지난달 병 치료를 이유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힌 뒤 민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사전 교감했다는 설을 부인하면서도 “총리로 일할 때부터 대통령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해왔다”고 했다. 실제 이 대표가 사면을 제안한 뒤 청와대는 “지금으로선 입장이 없다”는 원론적 태도만 밝혔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권이 코로나와 부동산 폭등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국민 통합 메시지로 고유 권한인 사면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靑의 ‘분리 사면’… 지지층 달래고 野 분열도 노리나

청와대가 현재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을 선별해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의 반발까지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만 먼저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80세 고령이어서 형 집행정지 신청 등으로 추후 수감 상태를 벗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형 집행정지는 사면과 달리 대통령이 아닌 법무부 소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도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선별 사면을 할 경우 국민 통합이라는 사면 취지가 퇴색되고, 야권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조치를 달리하는 방안에는, 두 전직 대통령이 수감 상태인 것은 같지만 적용된 범죄 분야가 다르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 자금 횡령과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개인 비리 성격이 짙다는 것이 여권의 판단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구속된 뒤 보석과 구속 집행 정지로 두 차례 풀려났고 작년 10월 세 번째로 수감돼 복역 중이다. 실제 수감 기감은 약 14개월이다.

반면 2017년 4월 구속 기소된 뒤 3년 9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정치적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박 전 대통령은 1심 재판 때부터 변호인 선임을 포기하고 법원 출석을 거부하며 사실상의 법적 대응을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음 달이면 1400일이 되는 박 전 대통령의 수감 기간은 내란과 반란 수괴 혐의로 구속된 전두환(750일)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된 노태우(767일) 전 대통령보다도 훨씬 길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당장 사면은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해선 박 전 대통령과 다른 기류가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하면 민주당에 등 돌릴 지지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민주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검찰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만 사면할 경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 보복임을 자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국민 통합이라는 사면 취지에도 어긋난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부는 국민 여론에 달려 있다는 시각이 많다. 당장 오는 14일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여론 향방을 살피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원심 판결인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이 이날 확정되면 사면이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5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상대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한 의견을 물은 조사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4.4%p) 찬성이 47.7%, 반대가 48%로 팽팽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사면 문제에서 문 대통령은 사법적 절차 문제와 함께 국민적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일부 의원은 여전히 ‘사면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낙연 대표 등 당 지도부 내에서는 “최소한 이·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분리 사면 조치로 설득이 가능한 상황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사면 카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여권에 불리한 선거 구도를 사면을 통해 중도층까지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별 사면은 야권으로부터 “국민 통합이 아닌 정치적 계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는 동정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선별 사면을 할 경우 야권이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로 분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