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정계 개편’ 얘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궁리해온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었다. 지방선거에서 YS계를 끌어안아 옛 민주 세력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찾아갔다. 당시 노무현은 YS가 1989년 일본 출장 당시 선물로 준 손목시계를 차고 와 보여주며 “총재님 생각날 때는 꼭 차고 다녔다”고 하면서 당 내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이 YS를 찾아간 것은 결코 즉흥이 아니었다. 2001년 덕유산 수련회에서 이미 그는 “PK(부산경남) 지역 3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한 사람도 당선이 안 되면 대통령 후보를 내놓겠다”고 연설했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과거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던 동교동과 상도동의 민주 세력들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YS를 설득하면 분명히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노무현은 확신했었던 것 같다. YS 문하생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던 그였기에, 자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면 두 세력이 하나로 뭉쳐 ‘반독재 민주 세력 재결집’을 이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YS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박종웅 의원을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달라고 하면 YS가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YS는 노무현의 기대와 달리 박종웅 의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양분된 민주 세력을 하나로 합치겠다는 노 후보의 전략은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어찌 보면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노무현은 한때 한배를 타고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선배이자 그를 정치권에 입문시킨 YS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엄연히 그는 서로 경쟁하는 상대 정당의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러자 노무현은 오랜 친구인 문재인을 ‘젊고 신선한 카드’로 생각하며, 부산시장 출마를 제안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나는 못 나간다’며 고사했다. “변호사나 하겠다. 날 정치권으로 끌어들이지 말라”며 버틴 것이다. 노무현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YS 방문’ 논란 당시 나는 노무현과 만나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노 후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뜻대로 안 되네요….”
“뭐가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민주 세력이 다시 하나가 되면 말입니다. 총장님! 우리나라가 건강해지고 세계에 우뚝 서는 강국이 될 수 있는데….”
YS를 찾아갔다가 실망이 컸다는 고백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킨 아버지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키워준 양아버지였다. 그가 YS를 찾아간 이유는 90년 3당 합당으로 갈라선 두 민주 세력이 다시 하나가 되길 고대하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정치는 냉엄한 현실인데…. 나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는 하지만 마냥 ‘순수의 강’에 빠져 상념에 젖어있는 그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빨리 잊으세요!”
“…총장님!”
“노 후보께선 혁명가입니까? 사상가세요? 이상주의자이십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후보께선 현실 정치인입니다.”
“….”
“훌훌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길은 또 있습니다!”
“…어떻게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비록 열세지만 이럴 때일수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이 되는 길입니다.”
그 무렵 내가 내밀히 PK(부산경남)에서 우리 당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여론조사 해보니 부산시장의 경우 1등은 이기택, 2등은 신상우, 3등은 문재인이었다. 정치인도 아닌 문재인이 시장 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자 쇄도한 인터뷰에서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물음에 ‘문재인 변호사’라고 대답해서다. 그는 당시만 해도 일부 운동권에서만 아는 인사였다. 노무현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당시 노무현은 부산상고 선배인 이기택을 싫어했다. 이 때문에 부산시장 후보로 이기택을 밀 수 없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물론 셋 다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요?”
“누굴 내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젊고 신선한 카드로 갑시다. 문재인으로 합시다!”
경남지사 선거에는 이장 출신 김두관을 내고, 울산시장 선거에는 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진 젊은 진보 인사 송철호를 밀기로 했다. 김두관과 송철호는 지방선거 출마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문재인은 마지막까지 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