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해 우리 정부에 인권 문제 관련 총 여섯 차례 의견 개진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며 개선 및 후속 조치를 권고한 게 세 차례나 됐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인 한국이 무리한 대북 유화책을 구사하다 ‘인권 후진국’ 오명을 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OHCHR은 인권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기구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07년부터 6년여간 부대표를 지낸 곳이다.

지난해 11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나흘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OHCHR이 지난해 우리 정부에 입장을 요구한 것은 여섯 차례에 이른다. 같은 기간 일본에 대한 질의는 한 차례였다. 질의는 주로 북한·탈북민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는 데 집중됐다. 혐의 서한(allegation letter)만 세 차례 발송됐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유엔이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정부의 답변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유엔이 한국 정부에 질의한 6개 인권 사안

유엔은 2019년 11월 20대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북송(北送)한 것을 언급하며 “북으로 돌아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북송을 강행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했다. 지난해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이후 정부가 북한 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 검사에 착수했을 때는 “충분한 설명 없이 이루어지는 검사는 시민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지난해 11월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유가족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 접근을 하고 있지 못하다. 경찰 수사가 월북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해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고교생 아들)에 보낸 답장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OHCHR의 문제 제기는 국제 사회에서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지만, 회원국은 60일 이내에 답변을 제출할 의무를 가진다. 우리 정부가 제출한 답변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선원 북송 문제에 대해 “귀순 의향에 진정성이 없어 추방했다”고 했고, 통일부 사무 검사에 대해선 “처벌이 아니라 역량 강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서는 18일 공개한 답변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정보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선 주로 북한 관련 사안에서 국제 사회가 한국에 대해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의회가 이른바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한 청문회를 준비 중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3일(현지 시각)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 인권 등에서 인권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 근무 시절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모습. /유엔 홈페이지

우리 정부에 지속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OHCHR은 강경화 장관의 ‘친정 격’이다. 강 장관은 코피 아난·반기문·안토니우 구테흐스 등 유엔 사무총장 3대에 걸쳐 중용되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권 전문가로 성장했다. 또 청문회 당시 어려움을 겪자 전·현직 인권대사들이 “민주 및 인권의 가치 실현을 해낼 적임자”라고 구명(救命)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유엔의 잇따르는 지적이 더 아프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1993년 설립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인권 분야 최고 권위의 국제기구다. 특별 보고관들이 세계 곳곳에 파견돼 인권 이슈에 대해 평가하고, 각국에 개선과 예방 조치를 권고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07년부터 6년 동안 부대표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