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치권 등에서 가해지는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여러모로 안타깝다”고만 했다. 최근 법원이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지만, 여권은 피해자 측의 호소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운동계의 대모'로 불리는 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침묵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북부지검은 남 의원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등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성추행 피소 사실을 가해자 측에 알리는 것은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남 의원은 검찰 발표 6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소 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다면서 “특보에게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물어본 것뿐”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남 의원은 박 전 시장과 가까운 인사로 꼽히며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냈다.
이에 피해자는 “남 의원은 피소 유출에 대해 사과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남 의원은 물론 당 지도부도 지금껏 아무 반응이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의 혐의가 확인된 것도 아닌데 당에서 입장을 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지는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도 안타깝고, 한편으론 박 시장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하는 부분도 안타깝다”고 했다. 피해자와 박 전 시장 모두에게 안타깝다고 한 것이다.
친문(親文) 성향 단체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재판부를 공격했다. 시민단체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는 지난 18일 “박 전 시장을 성추행범으로 단정해 인권침해, 사자명예훼손 및 직권남용 했다”며 이 사건 담당 재판부에 대한 진정서와 징계 요청서를 접수시켰다. 이들은 작년 8월 박 전 시장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도 무고 혐의로 고발했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성폭행 의혹이 제기돼 국민의힘을 탈당한 김병욱 의원을 향해선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탈당하면 그만'이라는 꼬리 자르기는 후진 정치의 전형”이라고 했다. 여성계와 야권에선 “제 식구만 감싸는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