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취재기자 40여 명이 “한겨레는 문재인 정권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자사(自社)가 ‘조국 사태’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 등을 다룰 때 정부·여당을 감싸는 보도를 해왔다는 취지의 글이다.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 썼고 이 과정에서 오보가 발생했다고도 주장했다. 해당 성명서는 지난 26일 사내 메일을 통해 국장단과 부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 한겨레신문 사회부장은 28일 보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자들은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며 “청와대나 법무부 관련 의혹 취재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며 결국 빈손으로 빠져나오기 일쑤였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운전 중 폭행을 감싸는 기사를 썼다가 오보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현장에서 무기력을 넘어서 열패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21일 ‘이용구 차관 관련 검찰 수사지침 “목적지 도달 뒤엔 운행 중 아니다”’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이 기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사실과 맥락에 맞지 않는 보도’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어도 어차피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을 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 써 준 결과”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자료를 준 검사로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이 지목됐지만, 법무부는 “모 부장이 해당 자료를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한겨레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일부 언론)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변인실을 통해 전달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당 부장이 자료를 준 것까진 부인하진 않았다.
성명서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 의혹에 대해 “공정한 잣대로 보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기자들은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인물을 떠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지켜온 가치”라며 “김 전 차관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와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김 전 차관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이 같은 한겨레 기자들의 성명을 언급하며 “추미애 전 장관과 이종근 검사장은 검·언 유착의 실체를 스스로 밝히고 책임져야 한다”며 “제대로 규명이 안 되면 국민의힘은 검·언 유착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날 저녁 입장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고, 맥락을 왜곡할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며 “이용구 차관 보도 관련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