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언급하고 있다.

2005년 7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은 정치 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며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역사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7월 29일에는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현행 소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통한 지역 구도 해소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구상은 결코 즉흥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에도 이따금 이런 구상을 털어놓으며 내 생각을 묻곤 했다.

“정치 개혁을 하려면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서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문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우리 미래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현실도 인정해야죠. 특히 야당은 소선거구제가 지금 딱 맞는 옷인데 어설프게 얘기를 꺼내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승자 독식 정치 구도를 깨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섣불리 접근하면 엄청난 반발과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카드는 실패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반대와 비판을 이어갔다. 여론의 반응도 차가웠다. 정치는 명분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노 대통령이 임기 중반에 꺼낸 대연정 카드는 훌륭한 명분이었지만 타이밍은 아니었다. 대통령에 막 취임했을 때 또는 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을 때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우리 정치는 두 편으로 나뉘어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뻬앗기 위해 늘 ‘이전투구’를 벌이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쪽 진영에서는 지역 구도 덕에 금배지를 다는 ‘요상하고 망측한 괴물’이 장수한다. 어찌 보면 21대 총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지금이 훌륭한 타이밍이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라면 참여정부에서 정치 개혁에 실패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허송세월한다면 다시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참여정부의 공과 과는 분명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건대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그를 도와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게 하겠다’고 모든 것을 건 나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노 대통령은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해 이전부터 거듭 소신 발언을 해왔다. 2002년 12월 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 참석해 “지역 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돼서도 멈추지 않았다. 선거제도 개혁과 연정을 연계시키는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취임 한 달여가 지난 2003년 4월 2일 첫 국회 시정연설에선 “지역 구도는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며 “지역 구도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 선거법을 개정해주시기 바란다”며 “이런 저의 제안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 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심 끝에 나온 노 대통령의 대연정 카드는 도리어 열린우리당의 혼란과 분열을 부추겼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나라당에 던졌는데 우리한테 폭탄을 던진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부·여당의 국정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대연정 제안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 노무현의 실패는 임기 내내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지지자들의 실망, 반발, 비판에 부딪힌 점이 가장 컸다. 특히 대연정은 국민의 지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상황에서 정국을 헤쳐나가려는 돌파구로 오해받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