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일본·호주·인도 등 4국이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 ‘쿼드(Quad)’에 대해 “인도·태평양 정책의 토대가 될 것”이라며 “더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쿼드 참여에 유보적인 한국 대신 지난해 유럽연합(EU)과 결별한 영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쿼드가 퀸텟(quintet·5인조를 의미)으로 확대 개편될 경우 자유·민주 진영에서 한국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29일(현지 시각) 미 평화연구소가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쿼드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실질적인 미국의 정책을 구축해 나갈 근본적 토대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안보보좌관은 “(중국에 맞서) 동맹들과 협력할 수 있어 기뻤는데 특히 쿼드가 그랬다”며 “아마도 우리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이후 구축한 가장 중요한 관계일 것”이라고 했다. 설리번은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로 그 포맷과 메커니즘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했다.

2019년 결성된 쿼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對)중국 견제의 가장 중심에 있다. 단순한 외교 회담을 넘어 지난 12월에는 합동 군사훈련까지 실시하며 결속력을 과시했다. 미국이 한국을 콕 집어 동참을 압박해왔지만, 우리 정부는 “특정 국가(중국)의 이익을 배제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강경화 장관)라며 참여를 유보하고 있다. ‘트럼프 지우기(ABT·Anything But Trump)’를 추구하는 바이든 정부가 쿼드만큼은 계승과 확대·발전을 선언한 만큼 한국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영국이 쿼드에 추가될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31일 “홍콩 문제 등과 관련해 영국의 보수파에서 아시아에 더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지난 28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이 ‘아시아판 나토(쿼드)’에 참가할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할 때 쿼드 참여 문제를 제기하고 협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영국의 쿼드 참가 가능성은 작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일과의 해상 연합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보여왔고, 지난달에는 일본과의 합동 훈련에 최신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호를 참가시킬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영국의 쿼드 참여 추진 배경에는 ‘아시아 차르(tsar)’라 불리는 커트 캠벨 미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의 구상이 있다고 분석했다. 캠벨 조정관은 그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쿼드에 참여국을 추가시키는 이른바 ‘쿼드 플러스’ 정책을 강조해왔다.

영국은 지난해 5월 대중국 협력을 위한 ‘민주주의 10국(D10)’ 모임을 제안하는 등 가치 기반 연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한국은 제외된 채로 쿼드가 확대 개편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민주주의와 반(反)중국을 고리로 한 재편에 한국만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며 “쿼드 참여를 결정하거나, 불참하겠다면 미·중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원칙이라도 세워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