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 한 달 만인 지난 9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최근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이 주도했던 검찰 고위 간부 인사 논의에서 배제되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날인 10일 신 수석 사표를 반려했지만 신 수석은 설 연휴 이후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당초 신 수석이 대통령에게 민정수석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여러 약속들을 주고받았다”며 “하지만 이번 검찰 인사 때 자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자,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신 수석은 사표를 낸 이후에도 출근하며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회의에는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맞는다”면서 “대통령이 사의를 반려했다”고 했다.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을 두 차례 모두 반려했다는 것이다.
신 수석을 둘러싼 이상 기류는 지난 7일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하면서 감지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언론 발표 몇 분 전 검찰국과 소통한 참모를 통해 인사안을 받았다고 한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신 수석과 윤 총장이 인사안을 가지고 의견을 주고받고 있던 와중에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인사를 앞두고 검찰이 월성 원전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에 대한 영장청구를 한 것 때문에 상황이 반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검찰 출신인 신 수석은 민정수석 수락 전부터 주변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주도했던 윤 총장 몰아내기를 비판해왔고 문 대통령에게도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백 전 장관 영장 청구 이후 박범계 장관은 신 수석을 빼고 친조국 라인으로 불리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과 검찰 인사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추미애 전 장관을 사실상 경질하는 등 윤 총장과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했지만 검찰이 원전 수사에 속도를 내자 검찰에 부정적 기류로 바뀌었다”고 했다.
백운규 영장청구 직후… 文대통령, 신현수 빼놓고 이광철과 검찰인사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번 사의(辭意)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은 16일 ‘사표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배경을 놓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는 말이 신 수석 주변에서 나왔다. 이달 초 검사장급 검찰 인사를 놓고 자신이 지휘하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에게 ‘패싱’당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용인한 것에 대한 섭섭함에서 민정수석직을 던졌다는 것이다.
◇이광철이 문 대통령과 인사 협의
박범계 법무장관은 지난 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 남부지검장으로 ‘영전’시키는 내용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일요일 검사장 인사 발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는 이광철 비서관이 주도한 것이며 신 수석은 그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 비서관이 해당 인사안을 문 대통령에게 들고 들어가 결재를 받았다는 말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 31일 검찰 출신의 신 수석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신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해 이뤄진 인사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윤 총장 등 검찰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검찰 내부에서도 “윤 총장 징계를 주도했던 기존 민정·검찰 라인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임이 반영된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검사 출신을 배제했던 기존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완화하는 역할을 신 수석에게 기대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월 18일 기자회견에서는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 수석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석에서 “현수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있고 신 수석도 “추 전 장관과 같은 방식으로 윤 총장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이뤄진 평검사 인사에서 일부지만 윤 총장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지며 여기에 신 수석이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도 정작 검사장급 인사에서 신 수석이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지난 8~10일 사이에 신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신 수석의 사의를 수용할 뜻을 보이며 후임자 물색을 지시했다가 다음날 다시 신 수석을 불러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인사는 “신 수석 사퇴가 청와대 내 혼란으로 비쳐 서울시장 선거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설 연휴 이후인 15~16일쯤 신 수석은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그만두겠다는 뜻을 보다 명확하게 밝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아직 신 수석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은 16일에도 청와대에 출근했다.
◇신현수? 이광철? 대통령의 선택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여권에선 “신현수 이전 청와대 민정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광철 비서관 뒤에 있는 조국 전 장관과 부산 친문(親文) 세력이 결국 문 대통령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지난 4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며 “청와대가 검찰 수사의 수위를 낮추려고 노력했는데 무위로 돌아가자 신 수석보다 이광철 비서관에게 힘이 실려버린 것”이라고 했다. 한 인사는 “원전 수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 ‘인사 패싱’으로 표출된 셈”이라고 했다.
검찰 출신인 이명신 반부패비서관도 조만간 교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과 이 비서관이 함께 교체될 경우, 민정수석실 내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검찰 출신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한 법조인은 “그 경우, 현 정권과 검찰 관계는 또다시 추미애 전 장관 시절의 갈등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조국·추미애 라인'이라 불리는 친(親)정권 성향 검찰 간부들이 기존대로 정권 수사를 틀어막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으로선 ‘신현수’와 ‘이광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며 “누구를 선택하든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됐다”는 전망이 나왔다. 임기 말로 접어든 문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레임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이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