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전격 사퇴하면서 대선 행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윤 전 총장은 사실상 사흘째 칩거 상태로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그룹과 정치권 인사들은 최근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가서려 하는 상황이다.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윤사모)’은 윤 전 총장 사퇴 후 주변 인사들에게 만남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기준 가입자 2만2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는 이 단체는 그간 대검찰청 앞에 윤 전 총장 응원 화환을 보내는 등 꾸준히 지지 활동을 이어 왔다. 작년 1월 만들어졌지만 최근 세를 확장하고 있다. ‘윤사모’는 “회비를 내는 가입자가 대구·경북 4000명을 포함해 2만명 규모”라면서 “지역위원장까지 대부분 꾸려진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측은 이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윤 전 총장의 사퇴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단죄를 피하기 위해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현 여권에 대한 저항의 측면이 크다”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예민한 상황에서 공연히 정치 논리에 휩쓸려 어려운 결단에 대한 진의가 곡해되는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도 윤 전 총장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조언을 하는 그룹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관계자는 “최근 윤 전 총장 주변에 여러 조언을 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정치권은 물론 학계, 산업계 인사들도 있다”며 “다만 윤 전 총장이 이들과 드러내놓고 만나는 상황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민주당 대표를 지낸 김한길 전 의원과 최근 만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김 전 의원이 사흘 전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대선 후보로서 윤 전 총장의 폭발력에 대해 수차례 기대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2014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합당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지내고 2016년 함께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는 등 가까운 사이다.
이에 따라 야권 일각에선 윤 전 총장과 안 대표 간 물밑 소통설도 돌았지만 안 대표는 부인했다. 안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이던 지난 2016년 윤 전 총장에게 비례대표직을 제안하면서 인연은 맺었지만 최근에는 그분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윤 전 총장의 회동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당내 의원들에게 “조만간 윤 전 총장과 만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의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친분이 있는 김 위원장은 최근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별의 순간’이란 표현을 써왔다.
야권에선 윤 전 총장이 당분간 잠행하다가 이달 하순쯤부터 각종 강연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LH 직원 등의 신도시 부지 투기 의혹 사건에 대해 언론을 통해 “망국의 범죄”라는 비판 메시지를 낸 것은 일종의 전초전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법치주의를 기준으로 상식과 공정의 원칙에 벗어난 문재인 정권의 문제들만 차분하게 지적해도 민심의 보편적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전면적인 정권 비판 행보에 나서게 된다면 그간 그가 이끌었던 검찰 수사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고 국민 실망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 전 총장은 이날 사퇴 후, 처음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마스크와 회색 패딩 점퍼 차림의 그는 서초동 자신의 아파트 지하상가에 있는 아내 김건희씨의 공연·전시기획사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