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5일 개통한 새만금 동서도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에 따르면 이 주위를 다시 토사로 메워 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photo 김영근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2일 전북 김제 심포항(港)에서 올라간 새만금 동서도로. 지난해 11월 25일 개통한 이 도로는 세계 최장 33.9㎞ 새만금방조제 완공과 함께 바다에서 호수로 변한 새만금호(湖)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다. 왕복 4차선 도로 위로 올라가니 양옆으로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광이 ‘모세의 기적’처럼 펼쳐졌다.

총연장 16.5㎞의 도로 가운데 지점에서는 동서도로와 열십 자(十)로 입체 교차하는 남북도로(남북2축) 교량이 새만금호 위로 놓이고 있었다. 3·1절 연휴 다음 날이라 그런지 지난해 말 개통한 왕복 4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인근 군산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미군 군용기가 자동차보다 많이 보였다.

향후 새만금 동서도로는 오는 2024년을 목표로 심포항 일대에서 공사 중인 새만금~포항고속도로와 연결돼 새만금신항(新港)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동서도로 서쪽 끝의 새만금방조제 신시배수갑문 일대에서는 새만금신항 매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만경강에서 흘러나온 강물을 새만금방조제 바깥의 서해로 뽑아내는 신시배수갑문 북쪽의 새만금휴게소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방조제 바깥으로 육중한 돌들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인공섬 형태의 새만금신항도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향후 30년도 계속 매립해야

새만금 일대 해상에 흙과 돌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어언 30년째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11월, 만경강와 동진강 유역에 농업용지를 조성하는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에 착수한 이래 30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일이다. 하지만 남북 간 방조제(남북1축)와 동서도로(동서2축)만 겨우 완공된 상태로, 호수를 육지로 바꾸려면 앞으로 몇십 년이나 더 토석(土石)을 퍼부어야 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새만금방조제 안쪽에 조성될 예정인 내부 토지와 담수호를 합친 면적은 409㎢로 서울 면적(605㎢)의 3분의 2에 달한다. 지난 30년간 바다에 쏟아부은 매몰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이제는 절대 끝내지 못하는 사업이 돼버렸다. 새만금개발청의 한 관계자는 “새만금 1단계 사업은 2020년으로 완료됐고, 2단계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최종 마무리는 오는 2050년으로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2050년까지 향후 30년간 더 흙과 돌을 바다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12월 제정된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 이명박 정부 말인 2012년 12월 탄생한 ‘새만금 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새만금 앞바다에 토석 쏟아붓기는 특별법 사업이 돼버렸다. 특별법에 근거해 ‘새만금개발청’이란 별도 관청까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8년 10월에는 지지부진한 매립 진도를 앞당긴다면서 ‘새만금개발공사’라는 별도 공기업도 출범시켰다. 매립을 이유로 공무원과 준(準)공무원 자리만 대거 늘린 셈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까지 제정됐다.

‘가덕도 특별법’의 나쁜 본보기

새만금 특별법은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나쁜 본보기가 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새만금과 가덕도 특별법은 모두 선거용으로 급조됐다는 점에서 출발 자체가 동일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새만금 사업을 최초 공약한 것은 1987년 12월 13대 대선 직전이다. 농업용지 확보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전북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한 선거용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신공항’이란 이름으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최초 시사한 것도 2002년 12월 16대 대선 직전이었다. 그해 4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돗대산 추락사고가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선거용 목적 역시 다분했다.

특정 사업만을 위한 특별법 역시 선거를 앞둔 비슷한 시점에서 태어났다. 2007년 12월 제정된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최초 발의된 것은 2007년 3월이다. 그해 12월, 17대 대선을 채 1년도 안 남긴 시점이었다. 전북 정읍이 지역구인 김원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전 국회의장)이 ‘새만금종합개발 특별법’이라고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김덕룡, 강봉균, 정세균, 김현미 등 전북 출신 의원들뿐만 아니라 박근혜, 이재오, 최경환, 김종인, 홍준표 등 당시 여야 의원 173명이 너도나도 이름을 올렸다. 결국 이 법안은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으로 이름만 살짝 바꿔서 17대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원안 가결됐다.

‘새만금 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 법안이 최초 발의된 것은 2012년 11월로, 그해 12월 18대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3월 확정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마스터플랜)’에 따라 농업용지 비율이 30%로 줄어들고 나머지 70%는 산업·관광·물류용지 등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소관부처를 기존의 농림부에서 국토부 산하 외청인 새만금개발청으로 바꾸자는 것이 골자였다. 남경필 당시 새누리당 의원(전 경기지사)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박근혜, 문재인 등 당시 여야 의원 172명이 이름을 올렸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오는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일반법령을 일거에 무력화하는 특별법이 급조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를 앞둔 여야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새만금 특별법 사례와 비슷하다. 지난 2월 26일 가결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야당인 국민의힘도 부산지역 의원 15명을 주축으로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특별법 통과 전날인 지난 2월 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거느리고 가덕도 앞바다를 찾아 힘을 실었다.

지난 2월 25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앞바다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왼쪽)가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왼쪽 세 번째)으로부터 가덕도신공항 계획을 보고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신항만·신공항·신도시 사업성 의문

‘새만금 특별법’ 통과와 함께 주무관청이 농림부에서 국토부 산하 외청인 새만금개발청으로 바뀌면서 매립 목적은 신항만·신공항·신도시 조성 등으로 180도 바뀌었다. 당초 사업 목적인 농업용지 확보는 후순위로 밀린 지 오래다.

하지만 새만금의 미래가 밝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항만을 조성하고 고속도로와 철도를 놓고 있지만 한국GM(옛 GM대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등 지역 최대 기업들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개발공사 맞은편의 ‘군산·새만금 비즈니스컨벤션센터(GSCO)와 전시관’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새만금신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는 군산항, 2시간 거리에는 대산항과 평택당진항이 버티고 있다. 군산항·대산항·평택당진항은 모두 무역항으로 지정된 국제항만으로, 오는 2040년까지 총 9선석(船席)의 새만금신항 개항 시 기능조정 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새만금에 신공항을 조성한다고 했지만, 새만금신공항 예정부지에서 동쪽으로 1.3㎞ 떨어진 군산공항도 현재 하루에 고작 제주행 항공기 2편만 뜨고 내리는 등 개점휴업 상태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 군산공항 이용객은 10만9800명. 군산공항보다 이용객이 적었던 공항은 사천공항(2만7433명), 원주공항(3만7729명), 포항공항(6만5994명) 3곳이 전부였다.

군산공항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는 김대중 정부 때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낙점하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개항한 무안국제공항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말에는 호남고속철(2단계)도 무안공항을 경유하기로 노선이 확정됐다. 하지만 특별법으로 설치된 새만금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월 24일 전북 전주를 찾아 “2028년까지 새만금신공항, 2030년까지 새만금신항만을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새만금 매립지에 신도시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신도시 입주수요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새만금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군산 인구는 26만명, 김제와 부안의 인구는 각각 8만명과 5만명에 불과하다. 새만금 인근 3개 시군(군산·김제·부안)의 인구를 통틀어 39만명에 그친다.

하지만 새만금개발청이 내건 새만금 매립지에 조성하는 새만금신도시의 총 수용인구는 27만명에 달한다. 오는 2050년이 목표라고 하지만 3개 시군 인구의 절반 이상을 새만금으로 이주시켜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숫자다. 결국 새만금 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때 지방 곳곳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들이 인근 인구를 흡수해 원도심 공동화를 촉진했듯이 ‘인구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새만금 22조, 가덕도 28조 토건 특수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으로 득을 보는 곳은 따로 있다. 굴착기로 바다에 흙과 돌을 쏟아부으면서 관급공사 실적은 물론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공기업과 토건(土建)업체들이다.

총사업비만 22조원이 책정된 새만금 공사에 관여한 공기업은 한국농어촌공사를 비롯해 공공매립을 주도하는 새만금개발공사(SC),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국가철도공단 등 국내 대부분 공기업을 총망라한다. 각종 관급공사 시공에는 국내 대부분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했다. 방조제 공사에는 현대건설·대림산업·대우건설 등이, 방수제(강둑) 공사에는 현대산업개발·SK건설·롯데건설·한라 등 국내 12개 대형 건설사가 참여했다.

가덕도신공항이 특별법으로 추진되면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또 한 번 토건 특수를 누릴 전망이다. 규모 면에서 새만금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가덕도 인근 해상의 평균 수심은 17m로 새만금호 평균 수심(5m)보다도 훨씬 깊다. 부산시가 추산한 가덕도신공항의 사업비는 활주로 1본(本) 기준으로 7조5400억원이지만, 국토부가 재추산한 사업비는 활주로 1본 기준으로 12조8000억원, 2본 기준으로 15조8000억원에 달한다. 군(軍)공항과 국제선, 국내선까지 모두 이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최대 28조6000억원으로 새만금(22조원)보다 많은 사업비가 들어갈 전망이다.

막대한 사업비에 따른 사업성 논란은 두 사업 모두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별법으로 신공항·신항만·신도시 등을 조성해본들 올 사람과 기업이 있느냐는 문제다. 하지만 약 8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새만금신공항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9년 1월 각 지역별로 할당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필요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삽입된 특별법으로 추진되는 가덕도신공항과 판박이다.

공유수면 매립, 환경파괴 우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역시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해상매립에 따른 환경파괴는 물론 막대한 국비 투입에 따른 사업성, 신공항 건설 이후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국토부·해수부 등 정부 부처 내에서 계속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2016년 세계 3대 공항설계전문그룹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사전타당성 조사를 거쳐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던 국책사업(김해공항 확장)을 통째로 뒤엎었다는 점에서 더욱 악성이다. 새만금 특별법은 사업을 주관하는 행정관청과 용지의 사용목적만 바꿨을 뿐, 용지 자체를 뒤엎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었다.

무분별한 공유수면 매립에 따른 환경파괴와 토지수용에 따른 재산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판박이다. 30년 전 시작된 새만금 사업 때는 방조제 조성과 해상매립에 따른 환경파괴와 생태계 교란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환경단체의 각종 소송 끝에 2006년 대법원으로부터 “투입된 공사비용 등을 고려해 새만금 사업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최종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지루한 환경파괴 논란은 계속됐다.

동진강에서 흘러나온 강물을 새만금방조제 바깥쪽으로 빼내는 가력배수갑문이 설치된 전북 부안 가력항에는 인근 어민들과 청년단체들이 새만금개발청과 송하진 전북지사 등을 상대로 ‘새만금 해수유통’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었다. 가력도가 있는 전북 부안의 명물인 백합죽을 끓여내는 백합(白蛤)조개는 새만금방조제가 강물을 막으면서 어획량이 급감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새만금방조제 건설로 사라진 백합양식장은 283㎢에 달한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따라 신공항이 조성되면 당장 집과 토지가 수용되고, 해상매립에 따른 환경 훼손과 어획량 피해가 예상되는 가덕도 대항항 일대도 가력항 인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25일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이 가덕도 앞바다 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게 보고한 가덕도신공항 계획대로라면 대항항은 완전히 수용돼 활주로로 바뀐다.

가덕도 일대는 조선시대 때부터 왕실어장이 있었던 겨울철 대구의 주산지다. 가덕도 바로 북쪽의 강서구 명지시장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어축제에 등장하는 떡전어 역시 가덕도 인근에서 잡히는 어종이다. 대항항 일대에는 일찌감치 대항어촌계에서 내건 신공항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가덕도 신공항 반대 대항동 주민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가덕도 대항동 대부분 주민은 대대손손 바다에 터를 잡고 어업활동을 주된 생계수단으로 살아왔다”며 “지난 15년 동안 선거철만 되면 고개 드는 가덕도신공항 건설 여론으로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받아왔다”고 호소했다.

경부고속도로 이래로 새만금 사업, 4대강 사업 등 각종 국토개발 사업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국토부에서조차 가덕도신공항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사실 국토부로서는 가덕도신공항 사업을 시작하면 예산과 자리를 늘릴 기회가 더 많아진다. 대표적인 4대강 사업 반대론자였던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 2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발사업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던 주무부처가 신공항 문제 있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들어야 한다”며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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