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31일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열세에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자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전날 “기권으로 민주당을 심판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여당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조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명분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패하더라도 명분 있게 패해야 한다. 그래야 차후를 도모할 수 있다. 가장 나쁜 게 명분 없는 패배이다”라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제 눈에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명분 없는 패배로 가는 게 보였고,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그래야 차후를 도모할 수 있으니까”라고 썼다.

이어 “민주당 혹은 문재인 대통령의 극렬지지자들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막말과 비난, 훈계질이 도가 넘었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그 맨 앞에 제가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모든 언론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접받던 시절에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 다수당의 대통령으로서 사법부, 검찰의 수장을 임명하는 막강한 권력자가 됐다”며 “아직도 문 대통령이 왕따라고 생각해 언론과 검찰에 의해 할 일을 못한다는 분노를 가졌다면 자신의 판단력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20대 비하에 “가르치려고 드는 데엔 나도 반감”

조 교수는 정부·여당 지지자들의 맹목적인 지지에 대해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금 문재인 정부는 묻지마 지지의 영양과잉 상태”라며 “이 때문에 청와대 참모들도 안이하고 의사소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위기요인이 산적한 데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 인사들과 지지자들이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보다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20대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유를 알려고 하기도 전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가르치려고 드는 것에 저도 반감이 생기는데 비난 받는 20대들이 과연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라고 했다.

/페이스북

또 조 교수는 최근 정부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한 것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LH 사건은 트리거(방아쇠)일 뿐, 오래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며 “민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교육과 부동산”이라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가장 공정해야 할 현 정부의 법무부 장관들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윤 전 총장의 사퇴가 땔감에 기름을 부은 셈”이라며 “폭발할 게 폭발한 것이지 LH사태가 근본 원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며 조국 수호하다가 지금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우리 편의 부도덕에는 눈 감다가 상대의 거짓말을 비난한다고 그게 중도층에 먹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 아니다”며 “왜 밀리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변화함으로써 1보 후퇴 2보 전진이 가능하다”고 했다.

◇ “서울시장 선거 기권 생각… 與지지자 때문에 국힘 찍을 생각도”

앞서 조 교수는 전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정면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정부·여권 지지층의 비난이 쇄도하자 해당 게시글을 ‘친구보기’로 전환했다.

조 교수는 이 글에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셋값 인상 논란’에 대해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익 추구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과 다를 바 없는 불법행위”라며 “사퇴와 도덕적 비난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무능을 이번 시장 선거에 심판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며 “나는 무능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하다. 무능보다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 위선”이라고 썼다.

조 교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아직까지는 기권할 생각이지만 이마저도 비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때문에 국힘(국민의힘) 후보를 찍을까 하는 반감마저 드니 더 이상 나 같은 유권자를 자극하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 다음은 조기숙 교수의 페이스북 글 전문

<죽어야 산다>

1.

이번 선거에서 기권으로 민주당을 심판하겠다는 제 포스팅이 언론에 인용되었고 그 때문에 왜 선거 끝나고 해도 될 말을 지금 하느냐며 노무현 정신 운운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도 민심 이반의 원인을 선거 후에 분석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시절 내가 별로 피해본 건 없지만 현 정부는 내 삶을 힘들게 하는데 내가 왜 민주당을 찍어야 하느냐”는 취지의 한 진보 청년의 게시글을 발견했습니다. 그 게시글에 대한 비난 댓글 때문인지 청년은 페북 게시글을 지우고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선거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대선까지 위험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어제 포스팅은 바로 노무현 정신을 상기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노 대통령은 다음의 순서를 통해 선거 승리에 대한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1) 명분 있는 승리

2) 명분 있는 패배

3) 명분 없는 승리

4) 명분 없는 패배

“명분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패하더라도 명분 있게 패해야 한다. 그래야 차후를 도모할 수 있다. 가장 나쁜 게 명분 없는 패배이다.” 이게 바로 노무현 정신입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을 때>

2.

제 눈에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명분 없는 패배로 가는 게 보였고, 그것만은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차후를 도모할 수 있으니까요. 민주당 혹은 문 대통령의 극렬지지자들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막말과 비난, 훈계질이 도가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맨 앞에 제가 있었다고 많은 분들이 지적합니다. 인정합니다. 문재인 후보가 모든 언론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접받던 후보 시절에 그랬습니다. 언론에 의해 왕따 당하는 후보가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 다수당의 대통령으로서 사법부, 검찰의 수장을 임명하는 막강한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문대통령이 왕따라고 생각해 언론과 검찰에 의해 할 일을 못한다는 분노를 가졌다면 자신의 판단력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지자의 트라우마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식을 망치듯이, 지지자의 트라우마도 지도자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영양실조의 참여정부, 영양과잉의 문재인정부>

3.

참여정부의 다수 정책은 진보색은 띠었지만 정파적이지 않았고, 국가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것이 정말 많습니다. 노무현이 재평가 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정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정치적으론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미 FTA는 진보진영을 두 동강 냈고, 민주당의 분열로 호남 지지를 잃은 데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로 인한 사퇴로 참여정부의 쇠락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이 때 지지자들이 밀리면 끝장난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정부에 대한 신뢰보다 높았기에 대통령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묻지마 지지가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지지자들 사이에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영양실조 상태에 있었으니까요.

언론은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환경은 180도 변했습니다. SNS가 전통 미디어를 대체했고, 기성 언론을 신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노대통령의 죽음이 국민들을 깨어나게 했고 언론의 문제를 직시하게 했습니다. 문대통령의 80%가 넘는 높은 지지도 지금도 역대 대통령 중 임기말 지지도가 가장 높은 게 언론환경의 변화를 증명합니다. 지금 문재인정부는 묻지마 지지의 영양과잉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참모들도 안이하고 의사소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도한 묻지마 지지로 인해 위기요인이 산적한 데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내부 비판을 밖으로 하지 말라는 저에 대해 하는 충고, 제가 그 이론의 첫 창시자입니다. 2007년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시작해 <왕따의 정치학>으로 이어지는 10여년 간 제 책을 학습하면서 문파가 이론적 토대를 얻었지요. 그랬던 제가 공개적으로 비판할 때에는 뭔가 목적이 있겠지요. 왜 이유를 알려고 하기도 전에 가르치려고 드는지요. 저도 반감이 생기는데 비난 받는 20대들이 과연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LH사건은 트리거일 뿐, 오래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

4.

LH사건은 오래된 적폐인데 현 정부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억울하고, 그렇게 좋았던 선거 분위기가 이 한 건으로 뒤집힌다는 게 이해할 수 없고, 분한 마음이 드는 것 이해합니다. 원래 여론과 민심이란 게 그렇게 작동합니다. 물이 100도C가 되어야 끓는 것처럼 민심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박영선 후보가 박빙으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을 때에도 저는 이기기 어렵다고 주윗 분들에게 말했습니다. LH사건이 아니라 다른 작은 말실수라도 트리거가 되어 결국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치리라 보았기 때문이지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대응 잘 한 것 인정합니다. 경제성적도 나쁘지 않고 위기관리도 잘 해왔습니다. 외교도 성과가 아직 없어서 그렇지 전쟁위험 제거했고 옳은 방향으로 잘 해왔습니다. 그건 이미 지난 총선에 다 보상을 해줬다고 생각하기에 유권자는 부채의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교육과 부동산입니다. 세종시 건설 이후 수도권 인구는 2016년까지 점차 감소했습니다. 그러다 2017년부터 수도권 집중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수능 위주의 입시, 부동산정책의 실패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차곡차곡 땔감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가장 공정해야 할 현 정부의 법부무장관들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습니다. 윤 전총장의 사퇴가 땔감에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LH사태는 단지 성냥불에 불과합니다. 변창흠 건교부장관의 LH 옹호발언은 기름에 물을 부었습니다. 폭발할 게 폭발한 것이지 LH사태가 근본원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명분있는 패배가 명분있는 승리로 가는 길>

5.

지금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건 명분있는 패배를 준비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기적이 일어날지 누가 아나요. 원래 약점 있는 후보를 상대로 선거에 이기기 가장 쉬울 것 같은데 우리 선거 역사상 네거티브해서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민석,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의 참패를 기억한다면요. 결국 공격받는 쪽이 이슈 소유권을 갖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공격보다 자신의 이슈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선거전략은 구도를 뛰어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친문 후보를 자처하다 대통령 지지도 떨어지니 거리두기를 한다는 언론보도를 봤습니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전략이 최악입니다. 임기말임에도 여전히 낮지 않은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민주당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입니다.

잘한 건 잘했다고 계속 홍보하십시오. 잘못한 건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고, 어떻게 정책을 수정할 것인지 약속하십시오. 기권하겠다는 유권자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며 위로해주세요. 댓글에서 훈계질도 그만 두세요. 그들이 민주당을 거대 여당 만들어준 장본인입니다. 원래 민주당 지지자는 평가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권한다는 이야기 제가 지난 총선에도 여러 번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며 조국 수호하다 지금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우리편의 부도덕에는 눈 감다가 상대의 거짓말을 비난한다고 그게 중도층에게 먹히겠습니까.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 아닙니다.

왜 밀리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변화함으로써 1보 후퇴 2보 전진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