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신문과 방송의 기사 검색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리한 시각으로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하고, 그것을 입증해줄 수 있는 팩트를 찾아내야 한다. 때론 별 의미 없이 떠돌아다니는 풍문에서 진주를 캐내기도 해야 한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떠돌아다니는 풍문 하나가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권 인사들이 사석에서 “윤석열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와주면 땡큐(윤나땡)”라고 은밀히 속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식적 판단을 뿌리째 흔드는 주장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윤나땡’은 공포에서 비롯된 비명인가, 아니면 놀라운 혜안에서 나온 탁견인가.
윤석열은 확고부동한 야권 대선주자 선호도 1위 인물이다. 조선일보 4월 17일 자 ‘아무튼 주말’은 깨알 데이터 복기를 통해 오세훈 압승의 1등 공신은 ‘윤석열’과 ‘아파트’라고 결론지었다. 2월 중 오세훈의 지지율은 다자구도 조사에서 박영선은 물론 안철수보다 낮았다. 그런데 윤석열이 사퇴한 3월 5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오세훈의 지지율이 나머지 두 사람을 누르고 35~40% 수준으로 급격하게 치솟았다. 윤석열이 사퇴하자마자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찍은 것에 고무되어 반(反)문 유권자들이 본능적으로 제1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집한 것이다.
공식 정치 입문을 밝히지도 않은 윤석열의 파괴력이 이 정도라면, 여권은 당연히 그의 대선 출마를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윤석열은 ‘공정’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드는 데 성공해 2030 젊은 세대에도 소구력이 있는 야권 잠룡 중 중도 확장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도대체 ‘윤나땡’은 어떤 배경과 의도에서 나온 목소리일까.
여기서 ‘윤나땡’과는 다소 다른 결의 이야기를 통해 접근하는 우회로를 택해 보자.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3월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진행자가 윤 전 총장의 출마 여부에 대해 묻자 “본인 뜻에 의하든 아니면 주변 여건 때문이든 대선 출마로 가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출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다. 출마할 수는 있어도 권력의지가 없어 출마하지 않는 경우와, 출마 의지는 있으나 여건상 출마할 수 없는 경우다. 필자의 촉으로는 노영민이 후자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한 ‘주변 여건’은 무엇인가? 장모와 아내, 즉 처가 문제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시중에는 각종 ‘지라시’와 옐로 페이퍼들이 쏟아내는 “윤석열 처가의 충격적 실상”이 떠돌고 있다. 장모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방편으로 썼다는 게 이야기의 요체다. 요컨대 윤석열은 처가의 ‘구린 과거’ 때문에 대선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출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노영민의 분석과 ‘윤나땡’은 동전의 양면이 된다. 그토록 가족사의 흠결이 많은 윤석열이 사리분별을 못 하고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어 ‘땡큐’라는 논리정연한 가설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여권 인사는 윤석열 때리기를 야권 경선 과정에서는 자제했다가 후보로 확정된 후에 집중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전략까지 제시한다.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윤나땡’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정말로 그렇다고 믿는 경우와 윤석열 측의 기를 꺾고 동요시키기 위해 ‘뻥카’로 쓴 경우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과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이명박이 야당 후보가 되면 필승이라는 주장을 퍼트렸다. 이명박은 일본 태생, 이명박과 이상득은 배다른 형제 등 출생의 비밀이 회자되었고, BBK 동업자 김경준이 귀국해서 기자회견 하면 게임 끝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2002년 대선에서 희대의 사기꾼 김대업 허위 폭로가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나 결정적 ‘한 방’은 허무한 ‘헛방’으로 끝났다. 아파트값 폭등 및 세금폭탄으로 화난 민심은 민주당의 흑색선전에 현혹되지 않았다. 조금 때가 묻었더라도 민생경제를 살릴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민주당은 사기꾼을 내세운 흑색선전과 정치공작에 능하다. 작년 4월 총선에서도 ‘제보자 X’ 지현진이 MBC와 결탁해 ‘검언유착 의혹’이라는 가짜뉴스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러한 공작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대박을 터트렸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쪽박을 찼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
윤석열은 2012년, 52세의 나이에 늦장가를 갔다. 현재 시중에 떠도는 충격적인 처가 이야기는 거의 전부가 결혼하기 전 일이다. 일단 사실관계 입증이 쉽지 않다. 목격자, 제보자 등의 형태로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왜 혼전 처가의 일을 지금의 남편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연좌제 적용에서도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치근덕댄다면, 노무현의 가르침대로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응수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윤석열이 책임지고 해명해야 할 것은 결혼 후 발생한 의혹이다. 추미애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이성윤의 지휘하에 여러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윤석열의 비위가 밝혀진 것은 없다. 오히려 윤석열도 원주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친정권 검사 이규원에 의한 윤중천 면담보고서 조작 및 한겨레신문의 대형 오보, 그리고 이러한 음험한 정치공작에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광철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까지의 윤석열 죽이기 공작은 실패로 끝났다. 거꾸로 윤석열의 맷집을 키워주었고, 윤석열 의혹에 대한 대중의 면역력을 강화해 주었다. 그런데도 여권 인사들은 ‘윤나땡’을 설파하고 다닌다. 김어준을 앞세워 생태탕과 페라가모 등 내곡동 의혹 제기에 ‘몰빵’하다 대패한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의 교훈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특정 카드의 효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유연성과 기동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윤나땡’을 속삭이는 여권 인사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