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이 4월에 실시한 유권자 정치 이념 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란 응답은 동률이었다. 2016년 말 탄핵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모두 ‘진보’가 우세한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지만 올 들어 4·7 재·보선을 계기로 ‘진보 다수 시대’ 시대가 저물면서 유권자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여야는 “중도파 표심 공략이 곧 내년 대선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에 실시한 주간 여론조사를 통합한 월별 집계(표본 4008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주관적 이념 성향은 보수 26%, 중도 33%, 진보 26%였다. ‘당신의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이 이같이 답한 것이다. 지난 1월부터 진보층(28→28→27→26%)은 하락세였고 보수층(25→25→26→26%)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비해 중도층(31→31→31→33%)은 4월 들어 증가세를 보이며 확실한 ‘중도 우위’ 지형을 구축했다. 같은 조사에선 지난 2016년 10월 탄핵 정국 직후부터 진보층이 보수층뿐만 아니라 중도층보다도 많은 ‘진보 우위’가 뚜렷했다. 2016년 10월과 2017년 5월 대선 때의 유권자 이념 분포를 비교하면 보수층은 28%에서 23%, 중도층은 29%에서 27%로 줄어든 반면, 진보층은 26%에서 37%로 급증했다. ‘진보 우위 지형’에서 대선이 치러졌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던 작년 4월 총선 때도 유권자 분포는 진보층 33%, 중도층 26%, 보수층 25%였다. 여권에선 “진보층이 다수인 시대가 열렸다”며 “20년 집권이 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1년 만에 유권자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진보층(33→26%)과 중도층(26→33%)의 증감이 크게 대비됐다. 다만 보수층(25→26%)은 변화가 크지 않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특히 20대와 50대의 변화가 컸다. 20대는 진보층 비율이 35%에서 25%로 줄었고, 50대도 36%에서 28%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작년 총선까지는 현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진보층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대거 중도층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언제든지 표심을 바꿀 수 있는 중도층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경쟁이 대선을 앞두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도층을 포용하기 위해선 여야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한 진단은 서로 달랐지만 내년 대선을 위해선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고 같은 처방을 내놨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검찰·언론개혁 같은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민심이 떠난 것 같다”며 “부동산, 경제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유능함을 보여줘야 중도층의 표심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현 정부의 내로남불, 위선, 무능에 실망해 진보층의 이탈이 커진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난 1년 동안 변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보수층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했다. 양당의 두 의원 모두 “당내에서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공략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