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5일 대선 본경선에 50%가 반영되는 여론조사 때 여권 지지층이 조사 결과를 왜곡하는 이른바 ‘역선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보 본선 경쟁력을 조사하는 방안을 적용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에서 여권 지지층을 제외하는 설문을 포함하지는 않되, 민주당 후보와 일대일 가상대결을 붙인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 반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은 “선관위원 12명이 만장일치를 봤다”고 했다. 본경선 때는 여론조사 50%와 함께 당원투표 50%가 반영된다.

그러나 회의에 앞서 일부 후보가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이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하려 한다면서 ‘공정 경선 서약식’에 불참하고 이에 반발한 정 위원장이 사의를 밝혔다가 번복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에선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둘러싼 불길은 잡았지만, 여론조사 설문이나 토론회 형식·횟수 등을 두고 또다시 분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이준석(가운데)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공정 경선 서약식 및 후보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 뒤편은 윤석열(왼쪽) 국민의힘 경선 후보와 정홍원(오른쪽) 경선 선거관리위원장. /이덕훈 기자

국민의힘 선관위는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7시간에 걸친 회의를 열고 본경선 여론조사 때 후보 전체를 나열하고 지지율을 조사하는 방식이 아닌 본선 경쟁력을 조사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와 양자 가상 대결에서 얻은 지지율을 지수로 환산해 반영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민주당 후보는 국민의힘보다 앞선 10월 10일 확정된다. 그런 만큼 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경선 후보 간 일대일 가상 대결을 붙이면, 응답자의 지지 정당을 확인해 걸러내지 않더라도 민주당 지지층이 국민의힘 후보를 의도적으로 지지하는 역선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또 ‘여론조사 100%’로 진행할 계획이던 1차 컷오프 투표를 ‘국민 여론조사 80%+책임당원 여론조사 20%’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3일 회의에서 경선준비위가 마련한 원안과 역선택 방지 장치를 넣은 중재안을 놓고 선관위원 의견을 들었다. 정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12명 사이에선 의견이 6대6으로 갈렸다. 그런데 정 위원장이 결론을 내지 않자 홍준표·유승민 후보 등은 “당헌에 따르면 가부동수(可否同數)일 때는 부결인데 정 위원장이 경선준비위 안을 수정하려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반발했다. 역선택 방지 장치 도입에 반대해온 홍·유 후보 측에선 정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 편을 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 측에선 “여권 지지자가 자기들에게 수월한 상대 후보를 고르려고 국민의힘 여론조사에 조직적으로 참여해 경선을 왜곡할 수 있다”며 역선택 방지 장치 도입을 주장해왔다.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4일에는 하태경·안상수·박찬주 후보와 공동 성명을 내고 “선관위가 경선준비위 원안을 즉각 확정하지 않으면 ‘공정 경선 서약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을 밀어붙이지 말라고 정 위원장을 압박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을 요구해온 최재형 후보도 이날 밤 “정해진 룰을 바꾸는 것이 저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멈추기로 했다”며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정 위원장은 5일 오전 이준석 대표에게 사의를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 대표에게 “후보들이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하면 앞으로 다른 후보도 그러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표가 거듭 만류하자 정 위원장은 사의를 철회하고 이날 오후 공정 경선 서약식과 선관위 회의를 주재했다. 홍준표·유승민·하태경·안상수 후보는 서약식에 불참했다. 이 대표는 서약식에 참석해 “공정 경선을 서약하는 행사에 빠진 자리들이 있는 것 같아서 당대표로서 매우 유감”이라며 “정 위원장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무한 신임과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선관위가 논란 끝에 역선택 방지 장치를 도입하지 않기로 하면서 경선 룰을 둘러싼 후보 간 갈등의 큰 불길은 잡혔다. 그러나 향후 경선 진행 과정에서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