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청이 화천대유 관련 민원을 그대로 캡처해 유출한 사실이 1일 확인됐다. 민원인이 성남시에 제출한 민원은 민원 당사자와 성남시만 알아야 하고 외부로 유출해선 안되는데, 성남시가 민원인 신원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대장동 개발 사업 시행사인 성남의뜰에 알려준 것이다. 대장동 사업으로 수천억 원 이득을 본 화천대유는 대장동 사업 특수목적법인(SPC)인 ‘성남의뜰’에 참여한 자산관리사(AMC)로 성남의뜰 전체 지분의 1%를 보유하고 있다.

성남의뜰이 지난해 4월 작성한 ‘성남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이행조치 명령에 대한 조치내역’을 보면, 성남시 대장동 예비입주자인 A씨가 2019년 2월18일에 성남시청에 접수한 민원이 그대로 캡처돼있다. A씨가 성남시청에 제기한 민원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아파트 부지 인근을 지나는 송전탑이 입주자 예정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A씨는 “성남시에 5500억의 개발이익을 가져다준 대장지구의 사업에서 막상 대장지구에 입주할 예비 주민들은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며 “예비 입주자 모임의 대표자의 한 명으로서 대장지구의 입주 예정시기인 2021년 5월 이전까지 흉물스러운 송전탑의 지하화를 완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을 성남시에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고 이에 성남시의 공식적인 의견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A씨가 성남시청 국민신문고에 접수한 해당 민원은 그대로 성남의뜰에 전달됐다. 성남시청 도시개발과 소속 B씨가 ‘성남시청 국민신문고 관리자 페이지’에서 해당 민원을 열어본 화면을 그대로 성남의뜰에 보고한 것이다.

B씨는 본지 통화에서 “해당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선 성남의뜰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차대로 민원을 성남의뜰에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비공개된 민원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민원인 신분이 노출된 것 아니냐’고 묻자 B씨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성남의뜰이 작년 4월 작성한 '성남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이행조치명령에 대한 조치 내역'
성남의뜰 '성남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이행조치명령에 대한 조치 내역' 문서에 나온 A씨의 민원. A씨가 성남시청 국민신문고에 올린 민원이 그대로 캡처된 것이다. 이 민원을 성남의뜰에 전달한 성남시청 소속 B씨의 신분은 본지가 빨간색 표시으로 가렸다.

대장동 송전탑 지하화 민원은 화천대유 내부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였다. 한국전력이 성남시에 보낸 공문을 보면, 송전탑 지하화 예상 비용은 400억원 안팎이다. 비용은 사업시행자인 성남의뜰이 내도록 돼 있다.

성남의뜰 해당 문서를 보면, 성남의뜰은 A씨가 성남시에 낸 민원들 대부분을 그대로 전달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성남의뜰은 “A씨가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약 900여명의 예비 입주자들을 부추기면서 2019년 1월 초부터 2020년 2월까지 약 20회에 걸쳐서 ‘대장지구 송전탑의 지중화를 요구한다”라는 취지의 민원을 성남시청에 제기했다”고 적었다.

A씨는 2019년 3월쯤엔 성남시 대장동을 관할하는 한강유역환경청에 ‘대장동 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개발부지 내 송전탑을 지하화해야 한다’는 민원을 넣었다. 이에 따라 환경청은 2019년 12월과 작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성남의뜰에 ‘송전탑 지하화 계획을 제출하라’는 취지의 이행명령을 내렸다. 성남의뜰은 A씨 등이 민원을 주도하자, 2020년 3월엔 A씨가 공무원을 부당하게 협박했다며 강요미수,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한 의정부지검은 작년 10월 A씨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A씨 민원을 받았던 환경청 공무원은 검찰에서 “(A씨 요청이) 민원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로 생각한다”며 “필요하면 자신이(내가) 고발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화천대유 등)이 자신에게 동의나 양해 없이 고발했다”고 진술했다.

성남의뜰은 논란이 되는 문서에서 “한강유역환경청, 성남시에 제기한 A씨를 비롯한 입주예정자들의 민원은 전자파의 영향을 우려한 순수한 민원 제기가 아니라 북측 송전탑을 철거하고 지중화함으로써 자신들이 분양받은 아파트 시세를 올리기 위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집단의 힘을 과시하여 사업시행자 및 성남시 등을 비롯한 제 3자에게 지중화 사업비를 부담시켜 경제적 손실을 가하는 행위로서 법으로 엄격히 금지해야하는 사실상 갈취행위에 준하는 범죄에 해당”이라고 적었다.

이기인 성남시의원(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이 사업 이익을 시민에게 환수시켜주는 공공개발이라고 자랑하면서, 한편으로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주민 민원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하는 표리부동한 행태”라고 했다.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제가 성남시청에 넣은 민원이 그대로 성남의뜰에 전달된 사실을 처음 알았다. 황당하다”며 “이것만 봐도 성남시가 지역 주민의 주거 환경 개선에 신경쓰기보다는, 화천대유 이익 보장에 집중한 것 같다. 화천대유가 성남시가 발주한 대장동 사업의 시행사인지, 아니면 거꾸로 성남시가 화천대유의 이익을 보장해야하는 시행사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