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업 설계” 인정해놓고…화천대유 수천억 이익엔 “몰랐다”
18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는 ‘대장동 게이트’ 청문회나 다름없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화천대유 측에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몰아준 ‘도둑 설계’ 최종 책임자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에 대한 야당의 공세에 대해 “국민의힘과 토건 세력이 얽힌 비리”라고 맞받았다. 민주당 의원들 또한 “대장동은 국민의힘 게이트”라면서 이 후보에게 해명 시간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핵심 쟁점은 이 후보가 민간에 과도한 이익을 몰아준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의 삭제에 관여했는지(배임) 여부였다. 민관(民官) 유착으로 귀결된 대장동 사업 구조 설계 과정에서 이 후보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했느냐는 것이다. 야당은 구속된 유동규씨가 이 후보 지시로 ‘화천대유 몰아주기’를 실행했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실제 이 후보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4~2016년 사이에 대장동 개발 계획 입안(立案)부터 사업 방식 결정, 인허가와 관련한 세세한 안건이 포함된 결재 문건에 최소 10차례 직접 서명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은 “유동규가 단순 실무자라면 설계자(이 후보)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설계자의 뒤통수를 수년 동안 제대로 쳤다면 설계자라는 분은 호구였거나 바보”라면서 “유동규의 백마 탄 왕자는 이재명 후보였던 것 같다”며 개입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이날 “대장동 설계자는 제가 맞는다”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시장에게) 보고할 이유가 없고, 구체적으로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이어 대장동 민간 업자들이 천화동인 1~7호라는 관계사에 명의를 숨기는 수법으로 막대한 배당 이익을 타낸 것에 대해선 “몰랐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이 사람(민간 업자)들이 3중 장막 뒤에 숨었다”며 “첫째는 은행 뒤, 두 번째는 SK증권 뒤, SK증권 안에서도 특정금전신탁이라고 하는 세 번째에 숨었다”고 했다.
◇선거 캠프 출신 유씨 구속에도…”측근 아니다, 직원 부패는 사과”
이 후보의 측근 비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이미 뇌물·배임 혐의로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 아파트를 보유한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경기도청 내부에서는 이 후보의 측근으로 ‘좌(左)진상, 우(右)동규’가 꼽힌다는 것이 야당 지적이다. 특히 유씨는 2014년 단국대 석사 학위 논문에서 “지도해주신 성남시 이재명 시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별도로 언급했다. 이 후보도 2019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재명·유동규의 투트랙 비법’라는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이 후보는 구속된 유씨와 ‘선 긋기’에 나섰다. 이 후보는 “제가 정말 가까이하는 참모는 동규, 이렇게 표현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유씨에 대해선 “배신감을 느낀다”며 “관련 공직자 일부가 오염되고 민간 사업자가 유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인사권자로서 깊이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측근 비리가 아니라 직원 일부가 비리에 오염돼 생긴 일이라는 취지다. 정 전 실장이 측근이라는 점은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정진상씨의 비리 연루 증거나 나오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할 거냐’는 질의에는 “윤석열 전 총장의 측근 비리가 있으면 사퇴할지 답변해주시면 저도 답변할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野 특검 주장에… “대장동은 국민의힘 게이트, 특검은 시간 끌기”
민주당 의원들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 게이트’라며 맞섰다. 당시 집권 세력이던 야권인사들의 반발로 공공 개발이 좌초됐다는 것이다. 화천대유 고문변호인단에 속한 인사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법조인들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야당이 요구하는 특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후보는 이와 관련해서 “특검은 시간 끌어서 정치 공세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라디오에 나와 “대선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검찰이 결론을 내줘야 한다”며 “12월 안에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화천대유 고문변호인단을 모두 국민의힘 인사와 가깝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천대유 고문변호사인 박영수 전 특검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고, 권순일 전 대법관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거나 전교조 합법화에 찬성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화천대유 자문변호사인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또한 이 후보의 ‘친형 강제 입원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했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이기도 하다.
◇대납 의혹에 “직접 송금, 친구들이 변호 맡아” 김영란법 위반 논란
이 후보는 자신의 선거법 위반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비를 대납시켰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농협과 삼성증권 계좌로 변호사비를 다 송금했고, 그 금액은 2억5000만원이 조금 넘는다”며 “대부분 다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대학 친구, 법대 친구들이어서 효성과는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이 후보와 비슷한 규모의 변호인단을 구성한 효성 조현준 회장이 400억원을 줬다고 언급하자 이렇게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의 해명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변호사비를 할인해주거나 무료로 할 경우 공직자에게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