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3일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개편 문제를 두고 혼돈의 하루를 보냈다. 이날 오전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이 기자들에게 “선대위 총괄본부장단 사퇴를 포함해 선대위를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밝힌 게 발단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지지율 하락세를 멈추기 위해 총괄 선대본부장 6명이 일괄 사퇴하는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외부 일정 중이던 윤 후보는 김 위원장의 선대위 개편 발언을 전해 들은 직후 남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로 들어왔다. 김 위원장이 사전에 윤 후보와 상의 없이 쇄신안을 밝혔기 때문이다. 윤 후보 측은 “후보가 숙고의 시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즈음 후보 직속 새시대준비위원회 신지예 수석부위원장도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신씨에 대해 국민의힘 일각에서 “젠더 갈등을 일으켜 후보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나왔던 터라 윤 후보가 리스크 요인을 줄여나가는 차원으로 해석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안팎에선 “6본부장뿐 아니라 김종인 위원장을 제외한 상임·공동 선대위원장 이하 선대위 보직자 전원이 일괄 사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선대위 개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마당에 해체 수준의 처방이 내려질 것이란 관측이었다. 오후 들어 김 위원장 측근인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이 윤 후보를 만나 김 위원장 구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나와 상의도 없이 이럴 수 있느냐”며 불편한 감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오후 2시 30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윤 후보에게) ‘총괄 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演技)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자신의 선대위 지휘 방침을 후보가 따라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윤 후보는 김 위원장이 자신을 배우에 빗대 ‘연기해달라’고 언급한 데 대해 주변에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윤 후보 측 인사는 “김 위원장 ‘연기’ 발언은 후보의 권위를 건드리고 지지자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발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후보의 말실수를 바로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윤석열 후보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책임을 지고 현재 맡고 있는 당직에서 사퇴하기로 하면서 선대위 전면 개편에 힘을 실었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기현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도 선대위직과 원내직에서 모두 물러나기로 했다. 원내지도부가 사의를 밝히자 일부 의원들은 “이준석 당대표와 최고위원들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의총 참석 직후 국민의힘 당사로 돌아와 윤 후보를 독대했다. 그사이 새시대준비위원회를 이끄는 김한길 위원장이 사의를 밝혔다. 김종인 위원장은 윤 후보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선대위 개편에 대해 “(윤 후보가) 특별한 답변은 없고 ‘사전에 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얘기는 했다”며 “(선대위 개편을) 거부하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발언 10분여 뒤 선대위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공지에서 “국민의힘 선대위는 쇄신을 위해 총괄·상임·공동 선대위원장, 총괄본부장을 비롯해 새시대준비위원장까지 모두가 후보에게 일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종인 위원장은 “나는 사의를 밝힌 적이 없다”고 하면서 혼란이 일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저녁 무렵 “임태희 본부장이 김 위원장 의중을 잘못 전했다”며 “김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김 위원장의 사전 상의 없는 선대위 개편에 불만을 갖고 김 위원장에 대해서도 사퇴를 요구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최악으로 치닫는 듯했던 양측의 신경전은 심야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9시쯤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거에 대해 많은 분이 걱정하시는 것은 오롯이 후보인 제 탓”이라며 “여러분의 의견을 잘 모아서 빨리 결론을 내리고 선대위에 쇄신과 변화를 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심기일전해 선거운동을 하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윤 후보는 이날 밤 김 위원장과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선대위 개편안에 대해 숙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