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오른쪽)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예방했다. photo 뉴시스

대선 막판 최대 변수로 언급되는 야권 후보 단일화의 복병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악연이 꼽힌다. 단일화의 주도권을 국민의힘이 쥐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대표가 ‘키맨’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안 후보와 같은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한 배를 탄 전력이 있다. 불과 3년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지난 2월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제안한 여론조사를 통한 야권 단일화에 대해 “그에 대해선 우리 후보가 굉장히 확고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방식의 단일화 시한은 이미 한참 지났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아무래도 안 후보가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하시면서 굉장히 반복되는 행동들을 많이 보여오셨다”고도 덧붙였다.

이 대표는 평소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을 자처한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선거 때도 안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해봤고, 같은 당에 있어 봤다는 점을 내세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정치권에 입문한 시점도 비슷하다. 이 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안 후보는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던 2011년 서울시장 선거 후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두 사람 다 정치권에 뛰어든 지 10 년 정도 됐다.

이준석·안철수 두 사람은 2016년 4월 총선 때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 처음 맞붙었다. 제3당인 국민의당 후보로 나선 안철수 후보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이준석 대표를 꺾고 3자 구도에서 당선됐다.

2016년 4월 서울 노원구 인덕대에서 열린 총선 노원병 후보 TV토론회 시작 전 후보자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이준석, 더불어민주당 황창화,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주희준 후보. photo 뉴시스

두 사람 모두 정치권 입문 10년

약 2년이 흐른 뒤 이 대표와 안 후보의 갈등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극대화됐다. 이때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당시는 안 후보가 절대 우위의 위치에 있었다. 이 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이끌던 바른정당 출신으로 바른미래당에 합류했고, 안 후보는 바른미래당의 한 축을 이룬 국민의당 대표로 바른미래당을 이끌었다.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서울 송파을,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졌다. 송파을은 최명길 의원이 선거법 위반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곳이었고, 노원병은 현역이었던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뒤 치러진 2017년 5월 대선에 나서면서 공석이 됐다. 당시 송파을 지역구는 바른정당 시절부터 채널A 앵커를 지낸 박종진씨가 지역위원장을, 노원병 지역구는 이 대표가 지역위원장을 맡아왔었다. 통상 여당과 제1야당에 밀리는 제3당의 경우 지역에 기반이 있는 인사를 전폭적으로 밀어줘야 당선을 바라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정치 현실에서 제3당이 설 자리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시 바른미래당 내외에서는 두 지역구에 박종진 전 앵커와 이준석 대표를 무난히 공천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 측의 판단은 달랐다. 송파을에는 손학규 전 대표가, 노원병에는 당시 안철수계로 분류됐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지역구 공천이 지연됐다. 당시 바른미래당에서 근무한 한 관계자는 “송파랑 노원이랑 질질 끌다가 자객공천같이 뜻밖의 인물들이 갑자기 나서면서 박종진과 이준석이 엄청 반발했었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당내 갈등이 고조되자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1차 공모에서 이 대표의 공천이 확정되지 않자 공관위원들 사이에 혼란이 생기면서 공천이 지연됐다.

손학규 전 대표 역시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스스로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결국 박종진 전 앵커가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후보에 패했다. 이 대표 역시 박 전 앵커보다는 일찍 공천을 받았지만, 결국 민주당 김성환 후보에 패했다. 박종진 전 앵커는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라며 “두 사람(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후보) 간에도 사감(私感)이 없다고 할 순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 전 앵커는 다만 “당시 노원병의 이 대표는 나보다는 공천을 빨리 받았던 만큼 두 사람 간 관계에서는 과거 지역구에서 직접 맞붙었던 게 더 앙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공천 파동

두 지역구에서 공천 난맥상을 보이며 보궐선거도 망친 바른미래당은 당시 지방선거에서도 단체장을 단 한 명도 내지 못하면서 원내 정당 사상 손꼽히는 대형 패배를 당했다. 안철수 대표 역시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도 져 3등에 그쳤다. 이렇게 된 데에는 송파을과 노원병 두 지역구에서 벌어진 공천 갈등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기에 안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독단적으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행보에 나섰던 점 역시 실책으로 부각되면서 안 후보의 책임론이 나왔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결국 독자 출마를 고집한 안 후보는 김문수 후보에 이어 3등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안 후보는 선거 패배 이후 엉망이 된 당을 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있는 딸 설희씨의 박사학위 수여식을 축하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에선 즉각 비판이 나왔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장진영 변호사는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이 많은 우리 (지방의원) 후보들이 전멸했다. 빛나는 보석 같은 후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설혹 떨어지더라도 선거비라도 보전받았을 후보들이 줄줄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렇게 힘든 후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아파해도 모자랄 판에 따님 축하 외유라니, 당시 빚더미에 앉았던 후보들은 안 전 대표의 외유할 형편이 부럽기만 했었다”고 기억했다. 일개 구청장 후보인 자신도 낙선인사를 했는데, 당의 창업주이자 대표가 낙선자들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하기는커녕 외국으로 떠나버린 이례적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장 변호사는 이후 완전히 반(反)안철수 인사로 돌아섰다.

이후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 체제로 유지됐는데 이후에도 분란이 그치질 않았다. 외국에 가 있던 안철수 후보가 돌아와서 손학규 대표에게 자기가 비대위원장을 할테니 당대표에서 내려오라고 면전에서 요구한 것이 갈등을 폭발시켰다. 손 대표가 제안을 거부하자 안 후보는 탈당을 했고, 유승민 등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과 이준석 대표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새보수당은 자유한국당과 합쳐서 미래통합당이 됐다.

이런 악연의 역사를 이어갔던 안철수-이준석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해부터 과거와는 결이 달라졌다. 지난해 6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제1야당의 첫 30대 당대표가 되면서 위상이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 간 갈등은 바로 다시 터져나왔다. 이 대표 선출 직후인 지난해 7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 합당 협상이 진행됐지만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당시에도 두 사람 간 감정싸움이 기폭제가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현재의 이준석 대표는 제1야당을 대표하는 만큼, 과거의 사감으로 대선의 주요 변수를 재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두 분이 과거의 악연으로 연결되는 건 맞는데, 과거의 개인적 감정으로 현재의 일을 좌우한다기보다는 대표는 단일화 그 자체의 효험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입장”이라며 “그 부분에 대한 정무적 판단에서 무조건 정권교체를 외치시는 분들도 있는데, 단일화 없이 정권교체를 하는 게 더 제대로 된 정권교체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적으로 우리 정치사에서 단일화는 2등과 3등이 시너지를 내기 위한 작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 윤석열 후보가 지지율 1등인 만큼 안 후보와 각자 완주를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했지만 졌던 2012년 대선 사례도 있는 만큼 단일화한다고 무조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감이 아니라 단일화 효험이 문제”

겉으로는 단일화의 효험을 강조하지만 이 대표와 안 후보 두 사람의 사감이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 갈등뿐 아니라 실제 지역구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치렀던 만큼 좋은 감정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두 사람 사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준석과 안철수가 지역구에서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붙었다. 한 번도 이준석이 이긴 적이 없다”며 “어느 지역구든 (공식 선거운동 기간) 15일 포함해 서로 ‘디스’하고 그러면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선거판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 역시 국민의당에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 유세 현장의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 후보의 자신감이 더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2월 17일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경선에서 맞붙었던 유승민 전 의원과도 만난다. 앞서 언급한 관계자는 “유 전 의원도 합류하면 안철수 후보는 진퇴양난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네이버 광고도 하고 유세버스도 돌리고 구색은 다 갖춘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돈이 하루에도 몇억원씩 나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조한 유세버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역 선대위원장과 버스기사 등 2명이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안 후보 측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안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측과 손을 잡기도 쉽지는 않다. 안 후보가 민주당의 주축인 친노·친문 세력과도 구원(舊怨)이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가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를 지내다 문재인 당시 대표를 필두로 한 친노·친문 세력과 결별해 새로 만든 당이 국민의당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재명·안철수 막판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친문·친노 세력이 안 후보와 여러 번 부딪친 만큼 그에 대한 강한 반감이 여전히 있어 화학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또 안 후보가 현재 정권교체를 들고나온 상황이라 명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단일화에 부정적인 이준석 대표를 향한 보수 야권의 압박 역시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이 같은 압박은 특히 보수 원로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바른미래당 출신 한 인사는 “어떻게 보면 악연의 연속이지만 최근에 안 후보를 조롱하는 듯한 메시지는 이 대표가 조금 심한 측면이 있다”며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대의는 정권교체인데 어찌됐든 단일화되면 명실상부하게 시너지 효과가 있는 만큼 이 대표도 조금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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