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점원이 영업시간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이날 방역당국은 자영업자들의 영업 제한 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 연장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2월 23일 17만1452명. 2월 24일 17만16명.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확진자 숫자가 등장했다. 애초 정부의 예측대로라면 2월 23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3만명이어야 했다. 하지만 단숨에 뛰어올라 17만1452명이 됐다. 그리고 다음 날인 2월 24일에도 17만명대를 기록했다. 실시간 국제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지난 2월 22일(현지시각) 전 세계에서 신규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15만8057명)이었는데 2월 23일 0시 기준으로 한국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일일 신규 확진 최다국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 송파구 송리단길에서 4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위기’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확진자가 17만명이 나오고 재택치료자도 이미 50만명을 넘기면서 뉴스에서는 의료 시스템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위중증 환자도 증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의 사망률이 인플루엔자(독감)와 비슷하다며 이제 코로나 출구를 찾는 초입에 들어섰다고 상반된 말을 한다.

“결국 정부 방역이 문제였다”

정부의 말마따나 대선후보들이 등장하는 유세장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지지자들로 가득하다. 국내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는 BTS는 1만5000명 규모의 관객 입장을 승인받았으니 이제는 공연장에도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백화점이나 아울렛 인근에는 주차하려는 차들로 도로가 빼곡하다.

그런데 막상 정부가 발표한 2월 18일 새로운 거리두기 조정안은 이씨 같은 자영업자들이 솔깃해 하는 정부의 낙관론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사적모임 6인은 그대로 유지됐고 대신 영업시간 제한만 오후 9시에서 10시로 1시간이 늘었다. 이씨는 체념한 듯 말했다. “시간이 늘면 매출은 귀신같이 오릅니다. 그런데 고작 1시간으로는 큰 반등이 있겠어요. 코로나는 자영업자 매장에서만 나오나 보죠 뭐.”

코로나19는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리던 자영업자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부러뜨렸다. 가뜩이나 영세 자영업자일수록 불황에 견딜 만한 기초체력이 약한 우리네 현실에서 코로나19는 넘지 못할 장벽이 됐다. 그들의 어려움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은 분기마다 발표하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대출’의 위험을 경고해왔다. 2021년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약 887조원에 달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해볼 때 30% 정도 증가했다. 게다가 이 중 약 9~10%, 액수로는 80조~90조원은 다중채무를 갖고 있는 자영업자가 받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실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간 정부가 발표한 방역조치는 특정 집단의 희생을 강요했다. 자영업자와 의료인력 등이 대표적이다. 정책 기준을 논의할 공론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이 가득 모이는 백화점이나 종교시설에 적용하지 않는 방역패스가 왜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에만 적용되는지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공포 속에 당초 여론의 지지를 업은 ‘K방역’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오미크론이 등장하면서 그 위상이 추락했다. 팬데믹 초반부터 작동했던 정부의 방역정책은 확진자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집단면역의 형성을 늦췄고 백신 효과마저 뒤따라주지 못하면서 오히려 뒤늦은 대규모 확진자 발생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뒤늦은 확산에 가장 피해가 극심한 그룹은 자영업자다. 특히 ‘코로나 탈출’을 앞장서 얘기해온 정부의 조치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심리적인 절망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자는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이들은 역대 대선에서 중요한 키를 쥐었던 존재다.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 열린 대선에서 자영업자는 매번 이기는 후보를 선택해왔다. 자영업자 지지율 1위 후보와 대선 승자가 모두 일치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가장 경기에 예민한 집단이라서다. 선거 승리의 가장 큰 결정요인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인데 경제와 관련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 자영업자다.

지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소속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을 규탄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역대 대선 자영업 지지율 1위가 모두 승자

한국선거학회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분석한 자료를 보자. 1997년 대통령 선거를 보면 최종 결과는 이회창 후보 38.7%, 김대중 후보 40.3%, 이인제 후보 19.2%였다. 그런데 자영업자로만 한정하면 김대중 후보 51.7%, 이회창 후보 26.8%, 이인제 후보 19.2%였다. 당시 블루칼라에서는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32.1%로 동률, 화이트칼라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6%포인트 정도를 앞섰다. 하지만 전체 득표율 차가 1.6%포인트였다는 점을 볼 때 자영업자에서 벌린 큰 차이가 김대중 후보를 당선시킨 1등 공신이었다.

2002년 대선의 최종 결과 역시 이회창 후보 46.6%, 노무현 후보 48.9%로 박빙이었다. 그런데 자영업자만 한정해서 볼 경우 노무현 후보가 51.6%를 얻어 이회창 후보(45.1%)보다 6.5%포인트 앞섰다. 당시 김대중 정부 말기 때 있었던 카드대란으로 노무현 후보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자영업자들이 대통령을 만든 격이 됐다.

2007년 선거에서 자영업자들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등장한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자영업자에서 62.5%를 얻었고 정동영 후보는 20.3% 득표에 그쳤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3.6%포인트 차이, 득표수로 따지면 약 108만표 정도 이겼다. 하지만 자영업자만 뜯어보면 박근혜 후보는 59.4%를 얻어 문재인 후보(39.7%)를 압도했다. 당시 화이트칼라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후보(61.5%)가 박근혜 후보(37.3%)를 압도했다. 화이트칼라가 완벽하게 진보개혁 성향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선거인데도 박근혜 후보가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영업자의 선택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박빙 구도가 이어지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도 절대적인 키는 자영업자들이 쥘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여야 모두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자극할 공약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특히 당장의 정책 결정권과 예산권이 있는 정부 여당에서는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16조9000억원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2월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는 정부의 시간”이라며 신속한 집행을 주문했다. 그러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추경으로 완전한 민생 회복에 재시동을 걸겠다”며 2차 추경까지 공식화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2월 들어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에서 밀리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내부에서는 가장 큰 악재로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이에 따른 방역대책을 꼽았다.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방역정책 피로감이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고 한다. 정부가 방역단계 조정시점을 두고 사실상 실패했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게 나오는 게 문제였다.

특히 자영업자의 반감은 원칙 없는 방역 기준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는 한 위원은 “감염병이 있으면 매출이 감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매출 감소가 사람들이 나들이가 두려워 찾지 않아서 생긴 건지, 아니면 정부의 방역정책으로 영업시간이 줄어서 생긴 건지가 중요한데 점점 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고 자영업자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 문제는 여당 후보가 풀어야 할 핸디캡이 된다.

“말하기 너무 어려워서 지금부터 마스크 좀 벗겠습니다.”

지난 2월 22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부천역 마루광장.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연단에서 마스크를 벗자마자 민생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안보, 질서 모두 중요하지만 민생, 먹고사는 문제,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어렵지 않았습니까. 국가가 방역을 다 책임져야 하지 않습니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우리 힘든 국민들에게 그 책임의 일부를 맡기지 않았습니까. 모두를 위해서 손실을 봤으면 우리 모두가 책임을 같이 져야겠죠. 바로 국가가 그 손실을 책임지는 게 타당하다고 보는데 동의하십니까.” 이날 이 후보는 약 25분의 연설 시간 중 절반 정도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문제를 언급하는 데 할애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이 문제를 부여잡는 건 중요한 문제다.

절반으로 떨어진 K방역 신뢰

자영업자의 규모는 상당하다. 지난해 12월 KB금융 경영연구소가 펴낸 ‘2021년 KB 자영업 보고서: 수도권 소상공인의 코로나19 영향 조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2690만명 중 자영업자는 657만명으로 약 24.4%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유권자 중 15%에 육박하는 수치다. 그리고 이들은 코로나 정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효능을 강하게 요구하는 집단이 됐다. 파편화됐던 과거와 달리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조직적 움직임도 일어났고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집단적 의견을 표출하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매우 충실히 움직인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런 특성이 드러난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제일 많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다른 선거보다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이 여론으로서 지금 드러나고 있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는 지적처럼 유연하고 흐름을 잘 타는 성격을 보인다.

전통적으로 자영업자는 스윙보터의 속성을 갖는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권자라는 얘기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자.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약 석 달의 흐름을 살펴보면 자영업자 지지율은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지지 후보가 그때그때 바뀌었다. 11월 3주 차 조사에서 윤 후보를 강하게 지지(윤 54%, 이 30%)했던 자영업 응답자들은 한 달 뒤인 12월 3주 차 조사에서는 이 후보를 더 많이 지지(윤 35%, 이 45%)했다. 하지만 2월 3주 차 조사에서는 다시 윤 후보가 오차범위 내 우위(윤 43%, 이 41%)를 점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화이트칼라는 이 후보를 지지하고 블루칼라는 윤 후보를 지지하는 큰 흐름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럴 때 중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게 자영업자다. 실제로 후보마다 자영업자의 표심을 많이 받은 시기와 전체 지지도 1위를 차지한 시기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이 집단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의견유보 비율도 매우 낮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추려 보면 자영업 유권자들의 지지는 윤 후보 쪽으로 조금 더 쏠린다. 윤 후보가 1위를 계속 구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선두가 바뀔 수도 있는 만큼 후보들이 자영업자 표심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메시지를 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코로나19 대응은 과학에 근거를 두지만 결국에는 정치의 문제다. 확진자 수가 증가하더라도 방역정책을 풀지 말지, 얼마만큼의 재원을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등을 모두 정치로 결정해야 한다.

아직도 이재명·윤석열 오가는 표심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과거의 정책 오류 때문에 손발이 묶여 있다고 본다. “자율적으로 사람들이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미리 준비했다면 지금의 방역조치를 어느 정도 완화하더라도 국민들이 알아서 반응하는 걸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은 방역을 완화하면 마치 위험이 없어진 것 같은 신호를 보내는 상황이 됐다.”

팬데믹 첫해가 마무리될 무렵인 2020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반성의 고백을 했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지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립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이후에도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

이런 불만은 과거 두터웠던 K방역에 대한 신뢰를 옅게 만들었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가 방역정책의 실패를 대변할수록 대선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2020년 상반기 80%대를 기록하던 정부 대응 평가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지난 2월 2주 차 조사에서 45%까지 떨어졌다. 자영업자는 42%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전체 긍정 평가율보다 낮았다.

확진자 숫자를 예측해온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다가올 3월 2일에는 23만명, 대선 투표일인 3월 9일에는 37만명까지 확진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확진자 수만 가지고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급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박영준 방대본 역학조사팀장은 “위중증·치명률이 떨어졌다고 해도 발생 규모 자체가 크면 비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확진자 5000명 발생 때 0.1%와 5만명이나 15만명일 때 0.1%는 다르다”고 말했다.

대유행의 정점으로 다가갈수록 정책의 실패가 도드라지는 건 오히려 ‘방역 심판론’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작동하지 못해서 생긴 신뢰 상실은 이 후보와 민주당에는 약점이 되고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는 공격 포인트가 된다. 그나마 이 후보가 믿는 건 현 정부와의 차별화로 얻을 수 있는 효용성이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에게도 좋은 기억은 있다. 다시 거리두기가 대폭 강화됐던 지난해 12월은 이 후보에게 불리했던 상황이었지만 당시 자영업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더 강한 지지를 몰아줬던 때가 있었다. 그가 정부에 줄기차게 ‘100조원 손실보상’을 건의하고 야당과 재정당국을 압박했던 시기였다. “적어도 내가 만드는 정부는 코로나19 앞에서는 현 정부와 다를 것”이라고 여야 후보 모두가 강조해야 하는 게 이번 ‘코로나 대선’이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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