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경북캠퍼스 총회 및 대구시당·경북도당 대학생위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단일화 안 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요.”

출구조사 당시만 해도 “나중에 전화드리겠다”며 황급히 끊던 윤석열 캠프 관계자의 목소리가 자정을 넘기면서 활기가 돌았다. 지난 3월 10일 0시32분경, 개표율 50%를 넘어서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처음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로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최종 결과는 신승이었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1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2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격차는 24만7077표로 0.73%포인트 차이다. 역대 최소 초경합 접전을 벌였다.

이번 대선이 특수했던 건 특정 세대를 둘러싼 담론 때문이었다. 정책 경쟁과 비전 제시는 사라지고 의혹과 스캔들만 난무했다. 하지만 단 하나, 2030 청년층을 둘러싼 후보 간 경쟁만은 치열했다. 대선의 전략이 네이밍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경우는 우리 선거사(史)에서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대포위론’이라는 선거 전략은 그만큼 주목받았고 이를 이끌었던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였다.

논쟁거리 될 세대포위론의 효용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세대포위론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3월 9일 방송3사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윤 당선인의 20대 예상 득표율은 45.5%였는데 이재명 민주당 후보(47.8%)에게 오히려 뒤지는 걸로 나왔다. 당초 ‘이대남(20대 남성)’의 지지를 바탕으로 20대에서 이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얻겠다는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30대의 경우 윤 당선인의 예상 득표율은 48.1%로 이 후보보다 2.2%포인트 앞섰다.

40~50대의 중장년층, 60대 이상의 고령층 출구조사는 예상대로였다. 이 후보는 40대(이재명 60.5%, 윤석열 35.4%)와 50대(이재명 52.4%, 윤석열 43.9%)에서 모두 강세였다. 윤 당선인은 전통의 지지층인 60대(이재명 32.8%, 윤석열 64.8%)와 70대 이상(이재명 28.5%, 윤석열 69.9%)에서 무려 30%포인트 이상을 앞섰다.

물론 초박빙의 승부를 고려할 때 20대 지지율을 저만큼 끌어올렸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시행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이대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세대 지지율에서 압도했지만 본 선거에서는 전혀 딴판인 결과를 얻었다는 점,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이번 선거 역시 40~50대의 중장년층과 60~70대 이상의 고령층 대결 구도가 이전처럼 유지됐다는 점, 20~30대 청년층에서는 승리가 아닌 박빙 열세가 연출됐다는 점에서 세대포위론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세대포위론이 작동하지 않은 건 선거 막판 20~30대 여성이 이 후보 쪽으로 급격하게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대녀(20대 여성)의 이재명 지지가 이대남의 윤석열 지지를 상쇄했다.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으로부터 윤 후보가 얻은 표심은 58.7%로 36.3%에 그친 이 후보에 앞섰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윤 후보(33.8%)보다 이 후보(58.0%)에 표심을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 캠프 측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20~30대 여성 공략에 주력했다. 관련 커뮤니티에 직접 후보가 글을 올리고 ‘N번방’ 사건을 공론화했던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유세차에 오르는 등 여성 표심에 호소했다. 특히 세대포위론의 핵심인 ‘이대남’ 집중 전략의 반대 급부로 이대녀 결집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다. 일종의 반작용이 20대 전체 열세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선거 당일 표심을 이전 여론조사와 비교해보면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윤 후보 지지율은 크게 변동이 없었던 반면 20대 여성 유권자의 이 후보 지지율은 크게 올랐다.

세대포위론이 작동하지 않은 건 이 대표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의회 권력에서 밀리는 윤 당선인 측에 필요한 건 대선에서의 여유 있는 승리였지만 24만여표라는 근소한 차이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거 막판 이준석 대표는 “윤 후보가 8%포인트 이상 이길 것이다”라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히고 다녔는데 그 예상도 완전히 틀렸다.

결국 대선 전략에 대한 책임 공방이 대선 뒤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세대포위론의 효용성이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논쟁거리다. 이 대표는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그리고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으로 모여들고 있는 2030세대를 결합해 대선에서 승리하는 ‘세대포위론’을 줄곧 강조해왔다. 설혹 40대와 50대에서 밀리더라도 청년층과 노년층으로 둘러싸면 무조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해왔던 건 한결같았다. “대선에서는 대전략이 필요하며 세대포위론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30 지지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 꼭 투표장에 갈 만한 동인까지 만들어야 한다.” “2030이 젠더와 공정 이슈로 민주당과 이 후보를 싫어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걸 관철하기 위해 윤 당선인과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20대 젊은층 주력 전략 삼은 첫 대선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후 드러난 대선의 특징은 지역주의였다. 1987년 대선, 1992년 대선, 1997년 대선이 그랬다. 유권자들은 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세대 투표의 영향이 처음 주목받은 건 2002년 대통령 선거였다. 유권자 연령대에 따라 지지 후보가 엇갈리는 현상이 처음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20~30대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고 40대는 박빙이었으며 50대 이상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이겼다. 최종 승자는 노무현 후보였는데 세대가 지역을 압도한 첫 선거였다.

세대가 처음 주요 변수로 자리매김한 뒤 선거 때마다 청년을 내세우지 않은 정치세력은 없었지만 대부분 빈 구호에 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여의도에서는 여전히 지역과 이념을 때에 따라 섞고 변주하면서 주요 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반면 세대는 이런 지역과 이념과 결합하는 종속 변수였고 그나마 그어졌던 세대 대결도 3040세대와 6070세대의 힘겨루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과거 선거에서는 인구의 벽을 가장 두껍게 형성하는 50대가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가 변수였다. 20대는 대체로 논외였다.

이 대표의 세대포위론은 20대, 특히 젊은 남성을 전국 선거판의 주요 변수로 활용한 첫 대선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한 고집이었다. 2030세대가 독자적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뿜고 있다는 점을 포착한 이 대표는 ‘젠더 갈등’이라는 기폭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 아래 잠자고 있던 이 갈등은 지난해 4·7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표심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재보궐선거 당시 20대는 60대 이상 고령층과 비슷한 투표 양상을 보였다. 젠더 이슈와 결합하면서 여당의 반대편으로 빠르게 결집했다.

재보선에서 드러난 20~30대의 폭발력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로 이어졌고 0선인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가 된 건 그 에너지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세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으로 이어져 ‘홍준표 돌풍’도 불러왔다. 이런 서사를 직접 겪은 이 대표는 세대포위론을 주요 전략으로 대선에서도 작동시키고자 했다.

물론 기존 정치권은 그 힘은 인정하지만 주력으로 삼는 걸 낯설어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기존 정치 문법과 다른 전략을 도입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봤다. 2012년 대선에서 20대의 정치 관심도를 등에 업고 대선에 뛰어들었던 ‘정치인 안철수’도 결국 구심점 형성에 실패해 좌초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 대표와 윤 당선인 사이의 갈등이 치닫던 지난해 12월, 윤 캠프 관계자는 기자에게 “특히 2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주력으로 삼는 건 선거에서 우책(愚策)”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와 윤 당선인이 갈등과 화해를 반복한 흐름에는 이처럼 세대와 진영 중 무엇을 우선으로 삼느냐를 둔 선거 전략의 싸움이 있었다.

‘진영’과 ‘지역’이라는 전통적 요인이 결정적

이념적으로 보수화된 2030을 잘 견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이 대표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이 세대의 보수화를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중앙일보와 한국정당학회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에스티아이’가 지난 1월 19~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59세 이하 유권자 2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0점(진보)부터 10점(보수)까지 자신의 정치이념이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0대 응답자의 평균치는 5.28점을 기록해 보수적인 그룹으로 나타났다. 반면 40대(4.93점)와 50대(4.88점)는 좀 더 진보 쪽에 가깝다.

다만 같은 20대 내에서도 성별에 따라 정치이념은 갈린다. 20대 남성(5.67점)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보수적인 반면 20대 여성(4.82점)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세대포위론의 핵심인 20대 남성이 20대 여성으로 상쇄될 수 있는 위험은 이 지표로도 증명된다. “이대남 공략을 위해 여가부 폐지 등 여러 정책을 선보여 득점한 것도 있지만 실점한 것도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김용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기획본부장)는 지적 역시 궤를 같이한다.

결국 세대포위론 대신 이번 박빙의 승부를 가른 변수는 또 다시 ‘진영’과 ‘지역’이었다. ‘정권심판’이라는 진영의 결집은 서울의 표심을 가져왔고 당선의 기틀이 됐다. 윤 당선인은 서울에서 50.56%의 득표율을 거두면서 이재명 후보를 5%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따돌렸다. 서울에서만 31만여표차 승리를 거뒀는데 두 후보의 격차가 고작 24만여표라는 점에서 볼 때 결정적이었다. 특히 종부세나 다주택자 규제 등 현 정부 정책에 민감한 강남3구의 압도적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에서 이긴 것도 중요했는데 윤 당선인은 줄곧 ‘충청의 아들’을 강조해왔다.

단일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단일화 이슈가 정권교체 진영을 총결집하도록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후보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일부 이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로 옮겼을 수도 있지만 단일화가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의 대결로 이번 대선을 단순하게 만들면서 표 결집을 이뤄낸 측면을 부인할 순 없다. “결과적으로는 단일화가 도움이 됐다. 만약 안철수 후보가 끝까지 완주해 가져가는 유권자를 생각한다면 윤 당선인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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