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집권 기간 동안 아이를 낳지 않겠다’ ‘윤석열 찍은 사람들은 이제 성폭행 당해도....’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분노한 여성 일부가 이런 글을 올렸다. ‘광우병’ 수준의 선동, 혹은 괴담이다. 이런 반지성적 주장은 온라인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며 ‘윤석열 국힘당=여성 혐오’라는 등식을 제조해내고 있다.
‘페미니스트 정부’가 되겠다던 문재인 집권 5년간 ‘반(反)여성적’ 행위는 열거하기도 지루하다. 그럼에도 20~50대 여성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 표가 많이 나왔다. 20대, 40대 여성들은 압도적이었다. 왜?
기자는 ‘이수정의 등장과 퇴장’이 궁금증을 푸는 열쇠 중 하나로 본다. 이수정(58)은 범죄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적 지명도를 높인 경기대 범죄학과 교수. 가정폭력,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중심 정책을 주장해왔다. 이 분야에서는 드물었던 여성 범죄심리학자로 여성들의 ‘큰 언니’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 29일 국민의힘 2차 선대위에 조경태 의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바깥에서는 국힘이 여성표를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왔다.
‘이수정 공동선대위원장’ 직함을 가진 건 딱 38일간이었다. 1월 5일 ‘살리는 선대위’가 해산됐다. 이후 ‘여성본부 고문’으로 내려 앉았다. 1월 18일 캠프에서 그를 두고 ‘해촉됐다’는 해명이 나왔다. 13일 만이었다. “우리 아저씨랑 나랑 안희정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 김건희 씨 발언을 비판한 후다. 이수정 교수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여성 악재’가 많다던 이재명 후보가 예상 외로 선전했다.
“권위주의, 가부장제를 배격하는 여성들은 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온라인 페미니즘 여론을 주도하는 20대, 586운동권이 키운 40대가 특히 이재명 후보에게 많은 표를 몰아준 것 같다.”
-지난 1월 7일 윤석열 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온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로 돌아가 보자. 후보 4인 중 3인이 ‘여성가족부를 폐지’를 들고 나왔다. ‘양성평등부’로 기능을 확대하는 안을 내놓은 사람은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였다.”
-윤 후보의 입장이 아니라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는 ‘여성가족부’라고 쓰고, 영어로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부’라고 쓴다. 부처를 만들 때부터 기만적인 용어를 쓴 것이다. 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여가부 대신 양성평등부서를 만든다는 게 내가 아는 후보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만 남았다.
“젊은층이 주도하는 메시지 팀에서 낸 것으로 안다. 실제로 윤 후보는 여성, 약자 보호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에서 결국 정통 보수층 표를 모아야 하니,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쪽으로 판단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겼으니, 전략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기자는 이 교수의 말을 ‘의도적 오류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선거공학적으로 ‘여가부 폐지’라는 선명한 구호가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캠프가 실행했다는 얘기다.
-‘공약집 보면 여성관련 공약이 훌륭하다’ ‘윤석열 여성 정책에 관심이 많다’ 이런 말은 의미가 없다. 유권자 몇이나 공약집을 보겠나. ‘후보 옆에 누가 서 있나’ 이게 메시지 아닌가.
“윤 후보도 국민의힘 안에서 큰 분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과 보수당 핵심 세력 사이에 균열이 있었다고 본다. 보수당이 나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민주당 표를 끌어오는 확장전략을 썼다면, 이 교수 같은 사람을 옆에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이유로 후보가 나를 영입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당내 반발이 컸던 것 같다. 원래 홍준표 후보가 대표였던 당이었다. 거기에 윤석열 후보가 자기 힘으로 살아서 후보가 된 것 아닌가.”
-지난해 11월 29일 이 교수가 영입되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2월 3일까지 당무를 거부했다. 이 교수는 결국 1월 초 캠프를 나왔다.
“제가 들어가자, 남초 사이트가 움직였다. 과거 방송에서 남편 살인범 고유정의 경계성 성격장애를 설명한 대목인데 이걸 근거로 ‘이수정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우긴 것이다. 전통 보수층에서 몰표를 받겠다는 당의 입장에서는 제 주장이 선거 전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대표 당무 거부는 나를 포함, 김한길, 신지예 영입까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이수정 교수는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와 열린공감TV 종사자와의 통화녹음이 1월 16일 MBC에서 방영된 후 당에서 또 ‘저격’당했다. 안희정 씨에 대한 김씨의 동정적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금도 김건희씨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본다. 그는 “김지은씨가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안 한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김지은 씨는 방송 다음날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윤 후보 측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후보가 한 번 사과한 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 1월 6일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나온 후에도 크게 흔들렸다.
“공약집 257, 258페이지쯤에 정확히 있다. ‘성폭력 무고죄를 강화’하는 게 아니고, 무고죄인 사람에 대해 처벌 수위를 강화한다는 뜻이다. 무고를 받아 ‘사법 피해자’가 생길 경우, 무고했던 사람들을 훨씬 더 엄벌하겠다는 뜻이다. 살인도 안 했는데 살인죄로 평생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있다. 무고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진짜 나쁜 범죄다. ‘성폭력 무고죄 신설’인 듯 아는 사람이 많았는데, 선거전략상 이걸 그냥 단문으로 처리하니 이런 오해가 벌어진 것 같다.”
-무고죄 처벌 강화 배경은 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후보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한 징계를 당해서 그런 것 아닐까 유추해봤다.”
-‘무고죄’는 오해받는 부분이 많은데, 선대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래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자는 게 제 주장이었다. 선대본에서는 보수 유권자 정서에 도움이 안되니까 좀 조용히 있어라 이런 분위기였다. 이겼으니까 제가 지금 설명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한 줄 메시지가 나오니, ‘윤석열 대통령 되면, 성폭행 신고한 여성을 감옥에 넣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증거 없이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온라인 랜덤 채팅앱에서 성매매 문자를 주고받았다 치자. 여성이 성폭행이라 주장하고, 남성이 여성 문자를 제시하면 무고죄 사건으로 입건이 된다. 이 정도로 강력한 증거에 기반하는 것이 무고죄다. 일반적인 피해자는 걱정할 필요없이 수사가 진행된다.”
-정치와는 거리를 둬왔던데, 캠프에는 왜 들어갔나.
“후보께서 당내 경선 때부터 말씀했는데, 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어떤 이유로?
“평생 양성 평등, 여성 보호의 입장으로 살아왔다. 이 후보의 삶의 행적은 반(反)여성적이다, 이렇게만 말하겠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사퇴하고,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을 취재한 박지현 씨를 공동비대위원장에 임명했다. 민주당이 ‘여성의 당’으로 거듭날까.
“박지현 씨는 열정적인 활동가다. 다만 민주당이 그걸 구현할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새 정부의 젠더 정책은 어때야 하나.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 유엔 행사에 참석했다. 핀란드 대사가 제게 한 문장을 말했는데 잊지 못하겠다.”
-한 문장이 뭔가.
‘이대남’들은 이수정 교수가 ‘여성 편만 듣는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2016년에는 여성들이 욕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다”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시킨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이수정 교수와의 ‘범죄와 여성피해자’, ‘한국 여성의 지위논쟁’은 16일(수)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