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나서고 있다. 이날 안 위원장은 차기 정부 초대 총리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photo 뉴시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과 인터뷰를 해보면 그의 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경우다. 이때는 반드시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은 서수를 붙인다. 그런 답변은 그가 시간을 들여 고민하거나 정리했던 문제에 관한 원인 분석 혹은 해법들이다.

지난 3월 30일 오전 11시30분,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코로나 비상대응특별위원회 브리핑을 위해 서울 통인동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그는 이미 10시에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맡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공언했다. 1시간30분 뒤 또 한 번 기자들을 만난 셈이다.

브리핑이 끝나자 한 기자가 물었다. “차기 총리가 갖춰야 할 자질이나 총리 인선에 담겨야 할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코로나 사태와 전혀 관련 없는 질문이었지만 안 위원장은 종이에 메모를 한 뒤 이내 대답했다. 그가 제시한 총리의 자질은 이랬다. ‘공정과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일자리 문제 해결’ ‘지역균형발전 해결’ ‘지속 가능성 문제에 관한 고민’ ‘국민 통합의 리더십’.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안 위원장이 내놓은 ‘5가지 자질론’은 역설적으로 그가 총리는 포기했지만 그 자리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평소 안 위원장의 화법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안철수 위원장이 총리를 원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단일화 청구서’의 몫으로 윤석열 정부 초대총리 0순위를 맡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비주류로서 주류와 싸운 경험 없어”

지금 안 위원장이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은 그의 다음 정치 행보를 위한 자산을 쌓는 과정이다. 그의 눈은 2027년을 향한다. 1962년생이라는 나이는 한 번 더 대통령직에 도전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 그에게 총리직은 매력적인 자리다. “행정직 경험이 없다”며 스스로 내각 참여 의욕을 드러낸 바 있고, 공동정부의 파트너라는 위상으로 볼 때 모두가 ‘행정직=총리’로 생각했다. 하지만 40여일의 인수위원장직으로 행정 경험을 매듭짓고 여의도로 돌아오는 걸 더 나은 선택으로 삼았다.

어찌 보면 당으로 돌아온다는 그의 강단에 박수를 칠 수도 있다. 다만 그에게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미스터리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뒤따른다. 안 위원장과 일한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존의 행보와 결이 좀 다른 결정 같다”고 봤다.

“과거 처음 정치권에 들어올 때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지지율도 높았다. 그런 것 치고는 여의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보긴 힘들다. 본인은 제3지대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어렵게 정치했다고 말하지만 당내에서는 비주류인 적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주류, 그것도 핵심인 정치만 했다. 내부의 적과 싸워가며 주류로 올라가겠다는 건 안 위원장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험대가 될 거라고 본다.”

당 대표도 여러 번 했다. 정당 생활도 오래했다. 이인자로 자리매김해 행정에서 역량을 보여주고 대권후보로 발돋움하는 수순이 좋았을지 모른다. 정치 입문 10년 차로 중견급이고, 선거도 여러 번 출마했다. 대중들이 그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단 미지수로 남아 있는 건 그의 개인 능력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그랬다. 이 전 총리가 차기 대선 주자로 발돋움한 건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를 수행하면서부터다. 호남의 4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를 지냈지만 전국적 지지도를 얻은 건 총리가 된 뒤였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보여준 진중한 스타일과 유려한 화법이 유명세를 이끌었다. 전국적 인지도와 국정 운영 경험을 발판으로 규합할 수 있는 세력은 좀 더 큰 정치인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반대로 이 전 총리가 겪은 그늘은 총리를 거친 대선후보의 한계를 증명했고 안 위원장도 이를 지켜봤다. 전 정부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우고, 정권 계승자라는 위상은 독이 돼 돌아온다. 대통령의 그림자는 총리 출신 정치인의 자기 색깔 찾기를 어렵게 만든다. 잘나가던 이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동반 추락했다. 정권 이인자 위상이 그대로 투영된 탓이다. 총리 출신 정치인들의 업보는 정부의 공과를 다 안고 가야 한다는 건데, 주로 과를 많이 안고 간다. 이홍구, 이수성, 김종필, 고건, 이해찬, 황교안 등 그동안 대선 때 호출된 총리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그가 풀어야 할 ‘세력화’ 숙제

그래도 총리를 선택했다면 그 이후를 기약하는 데 안전한 코스가 될 법도 했다. 반대로 당을 택한다는 건 윤석열 정권 밑에서 이인자로 이미지를 굳히기보다는 공동정부 창출자라는 대등한 입장에서 자기 정치를 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걸 뜻한다. 정치인으로서는 보다 적극적인 행보다.

총리가 되는 게 DJP연합의 JP(김종필) 모델이라면, 당으로 유턴하는 건 3당 합당 때의 YS(김영삼) 모델에 가깝다. 현재 ‘합당 로드맵’은 작동 중이다. 4월 중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을 매조지겠다며 서로 만나고 있다. 이제 안 위원장 앞에 남은 숙제는 ‘당 장악’과 ‘주류세력 교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 민자당 내 소수파로 출발했지만 자신의 대선 불출마까지 담보로 걸며 주류세력과 싸웠고 그렇게 야전(野戰)을 뛰며 권력을 잡았다. 비례대표 3석으로 국민의힘과 합쳐야 할 안 위원장이 흡사하게 걸어갈 길이다.

안철수가 과연 거대 여당으로 들어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문일 수 있다. 인수위에서 그는 나름 군기 잡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인수위 위원 중 3분의2가 당선인 측 인사들로 구성된 회의 첫날, 그는 비공개회의에서 “시간이 부족하다. 맡은 임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인수위에서 해촉하겠다”고 말하며 인수위원들의 분위기를 다잡았다. 안 위원장은 자신이 사람을 쓰는 일과 부리는 일에 능숙한 편이라고 말한다.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이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거나, 당을 만들어 운영하던 일이었다. 모두 인사와 관련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당으로 돌아간다는 건 당권을 노린다는 얘기지만 “지금 당장 당권에 도전할 뜻은 없다”고도 했다. 단, 도전하지 않겠다는 말은 없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임기는 내년 6월에 끝난다. 그 1년 남짓의 시간은 안 위원장이 ‘세력화’라는 난제를 풀어야 할 시간이다. 세력화를 이뤄야 당권을 획득할 수 있고 주류세력을 교체할 수 있다. 이 경로는 온전히 안 위원장의 개인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동시에 세력화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어려워했던 작업이다.

안 위원장은 이미 합당 실패의 경험을 안고 있다. 2014년 3월, 그가 대주주였던 ‘새정치연합’은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탄생했다. 그는 그렇게 거대 정당으로 들어가 공동 당 대표를 맡았다. 사람들은 “호랑이굴에 사슴이 들어갔다”고 평가했고 결국 ‘안철수의 세력화’는 실패했다. 2015년 12월, 안 위원장은 김한길 의원 등과 함께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야권의 대규모 정계개편을 촉발했다.

이때의 실패로 얻은 것도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 때 안 위원장이 합당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건 ‘기초의원 무공천’이었다. 당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었는데도 민주당 586들이 전 당원 투표까지 부쳐 부결시켰다. 안 위원장이 엄청나게 분노하고 좌절해 당대표실에 한나절을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안 대표와 오래 일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국민의힘 쪽과 일하는 게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고 할 만하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소감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핵관도 이핵관도 아닌 이들의 관심

그가 당으로 온다는 건 결국 기존 주류와의 충돌을 뜻한다. 당의 권력구조와 맞닿은 대목이다. ‘안철수 총리 배제설’의 진원지가 됐던 윤핵관, ‘안철수 총리 적합론’을 주장했던 이준석 대표 사이에서 안 위원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끼인 상태다. 비주류 청산과 주류로의 전환을 노리는 안 위원장에게 윤핵관은 맞서 넘어야 할 상대다. 인수위원회 구성에서 안 위원장이 전체 인수위원 중 약 30%가량 인사권을 행사하자 윤핵관들 내부에선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YS는 주류가 되기 위해 박철언 전 장관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족들과 싸워 이겨내야 했다.

‘이준석 vs 안철수’ 구도도 마찬가지. 개인적 악연을 넘어 두 사람은 다음 번 여당의 수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총리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며 이례적으로 안 위원장을 치켜세운 것도 “당으로 오지 말라는 얘기”로 해석될 정도다. 이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 대표 연임 가능성을 묻자 “제가 생각하는 A나 B 의원이 도전할 때는 그분을 밀 거다. 만일 약간 불안하게 생각하는 C나 D가 도전하면 그분들을 막기 위해 저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답은 없었지만 C나 D가 안 위원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럼 안철수의 편은 누가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내에서 윤핵관도 이핵관도 아닌 사람들은 안 위원장에 관심이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준표 의원이 만약 대구시장으로 가면 경선 때 홍 의원을 지지했던 이들이 구심점을 잃게 된다. 이런 분들 중에서 안 위원장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세력화’라는 숙제를 이루기 위해 안 위원장이 노릴 만한 틈새시장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정치인 안철수’는 소수의 보스에서 다수의 보스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합당이 마무리되면 안 위원장은 6월 지방선거에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해 결과물을 남겨야 할 입장이다. “일단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둬야 (당 대표 도전 등) 다음 행보를 바라볼 수 있다”(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적처럼 그가 증명하는 전국적 득표 영향력이 가늠자가 된다. 당내 영향력은 결국 선거 영향력이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만 2027년 미래 권력을 노린 샅바싸움은 곧 다가올 6월에 판가름 날 수 있는 문제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