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 창원시장 선거가 이례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창원은 광역지자체인 경상남도 아래 기초지자체에 불과하지만 재선의 현역 국회의원은 물론 전직 4선 의원까지 체급을 낮춰 도전장을 던졌다. 지역에서는 “창원시장 선거전 열기가 경남지사 선거보다 뜨겁다”는 말까지 나온다.
현재까지 경남지사 선거에 공식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인사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3선 창원시장을 지낸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 정도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도 이주영 전 장관을 비롯해 무소속 1명이 고작이다. 자천타천 경남지사 출마가 거론된 김태호·조해진·윤영석·박대출 의원 등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모두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현역 의원에 전직 4선 의원까지
반면 창원시장은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만 9명에 달한다. 창원 성산구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지난 4월 4일 창원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창원에서 도의원(재선)과 국회의원(재선)을 지낸 강기윤 의원은 “새로운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으니 창원시정도 국정운영의 철학에 맞춰 새롭게 바꿔야 한다”며 원전생태계 부활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 육성을 비롯해 △창원~동대구 간 고속철도 신설과 창원~수서발 고속철도 운행 추진 △의과대학과 종합병원 설립 △광역시 및 자율행정구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남 진주에서 4선 의원을 지낸 김재경 전 의원도 창원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표밭을 다지고 있다. 김재경 전 의원은 지난해부터 경남지사 선거를 준비해왔으나, 한 단계 체급을 낮춰 별다른 연고가 없는 창원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3월 24일 창원시장 출마선언에 앞서 “창원은 경남의 수도이고 특례시로 성장해서 시장의 권한과 위상이 전과는 달라졌다”며 “용인, 수원, 고양 등 다른 특례시는 그에 맞추어 3~4선 중진의원들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며 출마의 변을 밝힌 바 있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잇단 출마선언에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은 일찍부터 창원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지역 인사들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창원시장 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김상규 전 조달청장 등 9명으로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아무래도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군소 예비후보들은 전직 4선 의원도 상대하기 버거운 판에 현역 국회의원인 강기윤 의원까지 도전장을 내밀자 “어렵사리 확보한 창원 성산구를 다시 빼앗길 수 있다”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공단이 밀집해 민주노총 등 노조의 입김이 막강한 창원 성산구는 과거 권영길,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지난 2018년 ‘드루킹 불법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노회찬 전 의원의 자살로 의원직이 공석이 된 후에는 이듬해 보궐선거를 통해 여영국 전 의원(현 정의당 대표)이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강기윤 의원은 이 지역에서 초선 의원을 지내고 두 차례 낙선 끝에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되찾아왔다. 한데 강기윤 의원이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공석이 되면 또다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미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창원 성산구 보궐선거 출마의사를 밝혔다.
이에 일부 경쟁후보 캠프에서는 “지난해 부동산 문제에 연루돼 국민의힘에서 탈당을 권고받은 강기윤 의원이 국회의원보다는 주목이 덜한 창원시장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를 일부 수용해 강기윤 의원 등 5명에게 탈당을 권고하고, 비례대표인 한무경 의원을 제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172석의 민주당에 맞서 국회에서 1석이 아쉬운 국민의힘 내부 사정으로 실제 징계처분은 1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안상수 출마 이후 과열양상
창원시장 선거가 이상과열 현상을 빚는 것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4선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지낸 안상수 전 시장이 체급을 낮춰 창원시장에 도전한 뒤부터 이어지는 현상이다. 당대표까지 지낸 인사가 기초지자체인 창원시장 선거에 뛰어들어 상당한 논란이 됐지만, 어찌됐든 창원시장의 주목도는 경남지사 못지않게 높아졌다. 특히 안 전 시장이 경남도청 소재지인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면서 ‘앙숙’인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현 의원)와 옥신각신하면서 더욱 주목도를 높였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로 있을 때 치른 2018년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장 재선에 도전했던 안상수 전 시장이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창원시장 자리는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홍준표 당시 대표가 창원시장 후보로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자신의 측근 조진래 전 의원을 공천하자, 이에 불복한 안 전 시장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해 보수표가 갈라지면서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챙겼다. 결국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허성무 시장이 당선됐고, 조진래 전 의원은 지방선거 이듬해 소위 ‘적폐수사’ 과정에서 자살로 생을 마쳤다.
안상수 전 시장이 광역시 승격에 발동을 건 덕분에 창원시는 ‘꿩 대신 닭’으로 비(非)수도권 최초 ‘특례시’로 지정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 인구 100만명이 넘는 수원(118만명), 용인(108만명), 고양(108만명), 창원(103만명) 등 4개 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했다. 창원시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이달곤 당시 행안부 장관(현 의원·창원 진해구)이 주도한 창원·마산·진해 행정구역 통합 직후 인구 1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 100만명은 과거 광역시 승격 기준이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조직과 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특례시장의 권한도 이에 비례해 커진다.
특례시로 지정되며 권한이 커진 허성무 현 창원시장 역시 재선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된다. 1986년 부산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때 구속됐던 허성무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 등을 거쳐 김두관 현 민주당 의원의 경남지사(2010~2012년) 재직 시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과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허성관 전 장관의 동생으로, 2018년 민주당 최초로 창원시장에 당선된 바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드루킹 댓글사건’에 연루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구속으로 무주공산이 된 경남과 함께 창원시까지 되찾겠다는 심산이다. 지난 3·9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이 창원에서 59.42%를 득표해 민주당 이재명 후보(36.13%)를 20%포인트 넘는 표차로 따돌린 것도 이 같은 전망을 밝게 한다. 윤 당선인의 창원시 득표율은 경남 전체 득표율(58.24%)보다 근소하게 높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힘 박완수 의원(창원 의창구)과 강기윤 의원(창원 성산구)이 각각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에 출마하면서 창원의 중심이 텅 비어 버렸다”며 “국민의힘으로서는 자칫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다가 귀중한 의석 2석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