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의 일명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산업부 원전 관련 부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지난 3월 25일 원전산업정책과에서 한 직원이 나오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3월 25일과 2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하 공공기관 8곳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번 수사의 최대 관심사는 결국 수사가 청와대 윗선, 궁극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지로 모아진다.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무총리실 등 각 부처 산하 기관장들이 줄사퇴하는 과정에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그간 수사가 이뤄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에서도 청와대 핵심을 겨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검찰 인사 때마다 번번이 수사 핵심들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서 규명에 실패한 바 있다.

이번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향한 첫 질문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3년 전 이미 고발된 사안인데, 왜 이제야 수사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수사는 2019년 1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고발로 촉발됐다. 검찰은 수사가 이처럼 늦어진 이유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과 산업부 사건의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이 판결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 이제야 수사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다른 사건의 확정 판결을 기다렸다가 수사하는 사례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국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그간 수사를 하지 못하다가, 권력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민감한 시기에 비로소 본격적인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정권이 수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수사팀을 인사권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흩어버리는 바람에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월성1호기 수사든 환경부 장관 수사든 수사를 하는 사람들을 인사 때마다 사방으로 흩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월성1호기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 이두봉 검사장은 지난해 6월 인사에서 인천지검 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는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기소하기 직전이었다. 서울동부지검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주진우 부장검사는 김은경 전 장관을 기소한 뒤 다음 인사에서 안동지청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결국 검찰을 떠났다.

“동부지검의 대전지검 압색설까지”

결국 정권교체기에 검찰이 3년 묵은 사건을 꺼내들면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월성1호기 사건을 오래 수사한 대전지검에 관련 자료가 많아서, 3월 말 산업부를 압수수색할 때 동부지검이 대전지검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며 “하지만 그럴 경우 수사가 너무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 말 그대로 가능성에 그친 걸로 안다”고 했다. 검찰이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강행하는 만큼, 지검이 다른 지검을 압수수색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검찰은 대선 전 이미 또 다른 건으로 청와대 비서관과 산업부 장관을 기소한 바 있다. 바로 월성1호기 사건이다. 앞서 지난해 6월 30일 이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기소했다. 채 전 비서관과 백 전 장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와 업무방해, 정 사장은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현재 1심 재판 중이다. 당시에도 검찰의 칼끝이 채 전 비서관의 ‘윗선’을 향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수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채 전 비서관의 윗선을 기소하지는 못했다.

직권남용죄 어디까지 적용될까

이번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서 검찰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는 이 사건의 법리가 어떻게 구성되느냐는 점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원전을 폐쇄하기 위해 원전의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낮게 조작해(직권남용), 한수원이라는 공기업에 손해를 끼치고(배임), 산하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없게 했다(업무방해)는 비교적 명백한 죄가 있었던 월성1호기 사건 때와 달리, 이번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상대적으로 혐의가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이번 검찰 수사 방향의 단서는 월성1호기 사건 공소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공소장에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재직 당시 탈원전 반대 기관장들의 인사 교체를 지시한 정황이 적시돼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공소장 전문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2017년 8월 2일 열린 산업부 에너지자원실 회의에서 당시 에너지자원실장(내정자)이자 현재는 청와대 경제수석인 박원주 당시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에게 “산하기관 인사를 서둘러라.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임기가 많이 남았지만,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親)원전 성향을 띤 이들을 의도적으로 내쫓고 탈(脫)원전 인사들을 그 자리에 채워 넣은 것이다. 또 그로부터 약 열흘 뒤에는 박 전 실장에게 “우리 부 산하기관 전반, 특히 에너지 공공기관에서 탈원전에 반대하는 인사 등 신정부 국정철학과 함께할 수 없는 인물 등에 해당하는지 분류하고, 문제가 있는 인사들을 퇴출할 방안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도 했다. 이 같은 지시가 있은 지 한 달이 지난 2017년 9월, 산업부 산하 발전사 4곳 사장단은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신고리5·6호기 영구중단 등을 반대하던 이관섭 당시 한수원 사장 역시 임기를 1년10개월 남기고 사임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앞줄 가운데)이 지난해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尹 당선인이 ‘직권남용죄’ 수사 전문가

앞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피의자였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월성1호기 사건에서의 채 전 비서관과 백 전 장관의 기소 죄목에는 모두 직권남용 혐의가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이번 산업부 블랙리스트로 기소될 대상들 역시 직권남용 죄목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직권남용이라는 죄목은 매우 포괄적이고 애매한 범죄로 분류된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그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할 때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특성상 정당한 재량권은 인정되기 때문에 적용 요건이 엄격하다. 또 직권이나 남용, 의무 없는 일, 권리 행사 방해의 개념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방어하는 측도 이와 관련된 사안을 방어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탈원전 정책 등은 대통령이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인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박이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2020년 11월 “월성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라며 “이는 감사 대상도, 수사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윤석열 당선인이 직권남용죄 전문가라는 점이다. 직권남용죄는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과 2018년에 대거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수사를 주도한 이 중 한 명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윤 당선인이 이끈 서울중앙지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구속했는데,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죄목도 직권남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을 단죄한 문재인 정부가 똑같이 직권남용죄를 적용받을 위기에 처한 셈이다.

尹 “탈원전 수사방해는 정치 결심한 계기”

일각에서는 “산업부 블랙리스트는 결국 월성1호기 사건과 분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반대 인사들을 ‘국정철학과 함께할 수 없는 인물’들로 분류해 내쫓은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강창호 한수원 새울1발전소지부 노조위원장은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선거 때 도왔던 사람들을 여러 자리에 꽂으려 했던 사안으로, 핵심인물이 김 전 장관인 반면, 산업부는 대통령 국정과제에 맞선 이관섭 한수원 사장을 검찰이 나서 숙청한, 대통령이 가담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끝나면 죄목은 직권남용과 범죄집단구성, 나아가 국고손실죄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월성1호기 사건으로 백운규 전 장관을 기소한 검찰은 최근 백 전 장관의 공소장에 배임교사 혐의를 새로 추가할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사건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수사 의지가 얼마나 강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현재까지는 이 사건에 대한 윤 당선인의 수사 의지가 상당히 강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탈원전 수사 방해는 윤 당선인이 정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이자 명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 당선인이 본격적인 정치 선언을 한 뒤 가장 먼저 만난 인사도 탈원전 반대에 앞장선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였다. 앞서 언급한 월성1호기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의 이두봉 검사장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주진우 전 부장검사가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 검사장은 아직 현직에 있고, 주 전 부장검사는 환경부 사건 뒤 좌천돼 검찰을 떠난 후 현재는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사검증을 맡고 있는 측근이다. 이래저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