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정원장이 5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날 “나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나도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난 5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다만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생각은 갖고 있고 포기하겠다’고 말했었다. 이것(핵 포기)을 미국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박 원장은 “중국이 최근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수차례 요청했고 러시아도 같은 뜻을 전달했다”면서, “그렇지만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10일)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한(20일)에 즈음해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이번에 (함북 풍계리) 3번 갱도에서 핵실험을 준비하는 것은 소형화·경량화 실험을 하는 것”이라며 “이게 (성공이) 되면 우리도 일본도 문제가 된다. 핵실험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지금처럼 계속 핵을 가지고 폐쇄 정책을 하면 나는 북한도 붕괴된다고 생각한다”며 “북미가 싱가포르 회담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현직 국정원장의 언론 인터뷰는 드문 일이다. 그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도 (후임자 청문회 때문에) 한 달 이상 윤석열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듯 그때가 되면 새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조언할 수 있는 시기는 취임 전인 지금뿐”이라고 했다. 박 원장은 윤 당선인에게 “김정은이 저돌적이라고 우리까지 같이 그래서 되겠냐”며 윤 당선인의 선제타격 발언, 한미일군사훈련 발언 등은 조심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남북관계는 문재인 5년을 인정하고 거기서 이어가야 한다”며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면 안 된다”고 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5일 서울 모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박 원장은 국정원장 재직 내내 아침에 눈뜨면 두 가지 질문으로 일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어디 있나?” “어디가 해킹당했나?”라고 참모들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에 봉쇄령이 내려졌다고 들었다. 코로나가 발생했나.

“4일 오전 5시부터 시작해서 하루 반 정도 유지하고 해제됐다. 일단 코로나로 의심되지만 장티푸스 등 수인성 질환 가능성도 있다. 최근 중국 단둥에서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니까 하루 20량씩 들어오던 화물열차를 북이 스톱시켰다. 중국은 빈 열차라도 계속 가는 게 낫지 않으냐 했는데 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북이 올 들어 14번째 미사일을 쐈는데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가능성을 두고 봐야 한다. 중국은 수차례 북측에 더 이상 보호해주기 어렵다며 ICBM·핵실험 하지 말라고 했고, 러시아도 최근 그런 의사를 북에 표명했다. 내가 류샤오밍 중국 한반도 특별대표를 만나서도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을 적극 설득해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렇게 설득해도 김정은은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 간 보기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친서도 교환했는데 왜 계속 도발하나.

“북한은 자기들이 미국에 4년 모라토리엄(ICBM·핵실험 유예) 지속해줬고 문 대통령과 9·19 군사합의 이후 한 번도 도발 안 했다,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이 해준 게 뭐냐는 거다.”

북핵을 막을 방법은?

“싱가포르 회담으로 돌아가면 된다. 미북 간 점진적 행동 대 행동, 당시 그렇게 합의가 됐는데 하노이에서 패키지딜로 바꿨다. 일단 핵 동결까지 갔어야 한다. 북한이 다시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으면 핵 기술 향상도, 증설도, 확산도 중단된다. 싱가포르 합의로 돌아가면 된다.”

결국 김정은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나.

“김정은이 지금처럼 계속 핵을 가지고 폐쇄 정책을 하면 나는 북한도 붕괴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변화를 북한 인민들이 다 안다. 그래서 김정은도 변하고 있는 거다. 내가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과 얘기하면서 김정일과 김정은 성격을 비교해봤다. 김정일은 감성적이고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런데 김정은은 논리적이고 감정을 절제한다. 만기친람하고 냉정하다. 김정일은 나한테 쌀도 주고 비료도 달라고 했지만 김정은은 한번도 뭐를 달라고 안 했다.”

DJ정부부터 남북관계에 관여했다. 햇볕정책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

“그것 때문에 감옥도 가고 시련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전쟁 없었고 남북정상회담하고 북미정상회담도 했다.”

반면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됐다.

“(목소리를 높이며) 이중 기준을 대면 안 된다. 우리도 문재인 정부에서 엄청난 국방력 강화가 있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북한 편이다. 북한 핵 기술은 향상되고 시설은 증설되고 확산은 이뤄질 것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 북한에 심한 얘길 했지만 결국 남북 대화를 시도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도 그렇게 해야 한다. 결국 바뀔 것이다. ”

바이든 대통령이 곧 방한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경제관계를 생각하면 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1억달러가량 지원했는데, 바이든 대통령 오기 전 새 정부에서 먼저 1억달러 추가 지원을 발표하고 무기 공급은 안 해야 한다.”

대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내가 스가 전 총리를 만났을 때 외교라인에서 강제 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거의 의견이 (하나로) 도달이 됐다. 우리는 통 큰 양보를 할 준비가 돼있었다. 내가 스가에게 ‘소탐대실하지 말고 두 정상이 만나라. 돈(배상금) 까짓것 누가 내면 어떠냐’는 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못 하더라.”

요즘 사이버 안보 중요성이 커졌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김정은 어디 있냐. 어디서 해킹당했냐를 묻는다.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 5년간 돈으로 치면 24조6000억원어치의 기술 유출을 우리가 방어했다. 요즘은 간첩도 사이버 수사로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공수사국은 그대로 유지시킬 것이다.”

박지원 국정원장./남강호 기자

국내정보 수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정원은 흑역사가 있다. 이걸 하지 않겠다고 법과 제도에 의거해서 완전히 개혁했다. 요즘은 박지원 지나가면 새도 안 날아간다. 과거사도 내가 그만하자고 해서 다 덮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연루 여직원도 내가 승진시켰다.”

5·18과 세월호는 이제 진상이 규명된 것 아닌가.

“어느 정도 다 됐다. 5·18은 유족회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다 만족해한다. 단 발포명령 등 구체적 자료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세월호도 사참위가 자료 22만건의 원문을 열람했지만 ‘세월호 소유주가 국정원이다’, ‘강정마을로 가는 철근을 실었다’, ‘미국과 무슨 협력을 했다’ 이런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다. ”

당분간 윤석열 대통령이 직속 상관이 된다.

“불사이군(不事二君·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이란 말이 있는데 난 삼군을 하게 됐다. 어쨌든 충성을 할 것이다. 국정원 일이 그렇다. 그래서 그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수위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던데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라고 쓴다. 우리가 핵을 보유할 수 있나. 그리고 한미일 군사훈련은 아직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도 문재인 5년을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퇴하면 어떻게 지낼 건가.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다. 어린이날에 직원들 가족을 만났더니 TV조선 ‘강적들’ 얘기를 많이 하더라. 거기부터 나가서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