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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은 분노와 환희가 동시에 터져 나오던 현장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내로남불에 질렸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아 좌절하던 사람들이 ‘못 살겠다 바꿔보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모였다. 태극기를 흔들거나 ‘공정’이 새겨진 빨간 우산을 든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초여름 더위로 금방 땀이 흐르는 날씨였지만, 실내로 들어가지 못한 그들은 기념관 입구에서 기다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날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출마 선언문에서 ‘정권교체’를 7번 언급했다. 공정, 상식, 법치 등을 제외하고 주목을 끈 단어는 ‘카르텔’(3번)이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민주당 정치세력을 ‘이권 카르텔’이라고 규정했다. 정권교체를 통해 그들이 망가뜨린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범죄단체를 향한 수사기관장의 선전포고처럼 들렸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심판 여론을 업은 윤 대통령은 당시 ‘정권교체의 유일한 대안’으로 일컬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마 선언 이후 254일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두 달을 갓 넘긴 윤석열 정부를 향한 여론은 심상치 않다. 취임 초 50%대였던 국정 지지도는 7월 들어 30%대까지 주저앉았다. 한국갤럽이 7월 2주 차 여론조사(7월 12~14일 조사)에서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2%,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3%였다. 전주 조사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는 5%포인트 하락, 부정평가는 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특히 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었던 60대 이상과 보수층에서조차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7월 1주 차 50%였던 60대 지지율은 39%로 떨어졌고, 자신을 ‘보수층’이라고 밝힌 응답자 지지율도 62%에서 53%로 하락했다. 중도층의 부정평가는 58%, 긍정평가는 26%였다. 지역별로는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에서 54→53%, 부산·울산·경남은 45→34%로 떨어졌다. 서울과 인천·경기는 각각 32%와 29%만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는 62%가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전주 조사(70%)보다 8%포인트가량 하락한 수치다. 종합하면, 취임 두 달을 갓 넘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지역·세대·이념을 가리지 않고 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광우병 파동을 겪은 이명박 정부 1년 차 때처럼 2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내에서조차 “당분간은 35%대 안팎에서 왔다갔다 할 것”(국민의힘 중진 의원)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사 논란 겪으며 ‘윤석열다움’에 의심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문 정권의 탄압에 맞서며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은 핵심 지지 기반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굳건한 보수층도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 정권에 등 돌린 중도층과 2030세대의 전략적 선택+보수층의 강한 결집’ 덕이었다는 분석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심판자’ 성격이 강했던 윤 대통령은 이전 정부와의 명확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할수록 존재감을 잃기 쉽다. 정치적 위상 자체가 문재인 정권과 닮아 보이는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대통령의 국정동력을 발휘할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윤 대통령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제가 ‘인사’다.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의 이유 역시 인사(26%)가 제일 많았다. 그다음이 경험·자질부족(11%), 경제·민생(10%) 순이었다. 다만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인사 논란은 단순한 자질 부족이나 개인적 비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자식이나 가족이 특혜를 입었거나(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누군가의 지인이 공직에 진출한 경우(사적 채용) 등이다. 특히 윤 대통령 부부의 지인들이 잇따라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확대됐다. 여론은 이것을 공정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공정에 특히 예민한 2030층은 “그래도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더니 9급에 넣었더라.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아서 내가 미안하더라”(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같은 해명에 분노한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엽관제’ 발언 역시 청년층의 분노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공정은 윤 대통령이 정체성처럼 내걸어 왔던 가치다. 하지만 일련의 인사 논란으로 인해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윤석열다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전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렸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정권교체가 되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서 “윤석열 정부는 철저하게 공정과 상식에 의해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본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윤리위 징계도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2030세대 상당수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성상납 의혹과 관련해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의 배경을 국민의힘 내부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응징’ 성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회사 4개사가 지난 7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4일 발표한 ‘이준석 대표 징계 과정 평가’에 따르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결과’라는 응답이 54%였다. 정당한 과정을 거친 결과’라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세대별로는 18~29세의 44%, 30대의 57%가 이 대표 징계에 정치적 판단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오디션을 통한 대변인 선발, 공천 자격시험(PPAT) 도입 등 정치권에서 ‘경쟁을 통한 공정’을 강조해온 바 있다. 기존의 정치권 문법을 뒤집고, 건건이 당내 의원들과 충돌했던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이준석 없는 국민의힘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중진의원은 이 대표 사태에 대해 보다 심각한 평가를 내놨다.

“(이 대표 징계는) 사실상의 축출이다. 이 대표가 비판받을 처신을 여러 번 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그룹이 함께 연대를 이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제거’ 내지는 ‘토사구팽’을 해버리면, 기존에 있던 인물로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새보수당 간의 통합, 그리고 김종인·이준석을 거치며 체질 변화를 시도해왔는데, 그 흔적들이 이제 다시 지워질 것 같다.”

한덕수 국무총리(맨앞)와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오른쪽),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와 경제 대책 등을 주제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만났다. photo 뉴시스

“과거 얘기 그만하고 실력을 보여라”

지난 대선 과정에서부터 윤 대통령을 향해서는 ‘정권교체 그 이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언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전 정권에 비하면 우리가 낫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고 그런 인식이 여론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문재인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부분들마저 흔들리면서 중도층과 보수층의 민심도 요동친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윤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는 것에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윤 대통령은 장관 인선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던 지난 7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그럼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며 기자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보라”고 했다. 주요 보직에 검찰 출신 인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고, 전 정부에 대한 보복 수사 논란에는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느냐”고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권에서 수없이 비판받았던 ‘전 정권 탓’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귀순 어민 강제북송 사건 등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대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럴 때 대통령 지지율이 잠시나마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재 윤 대통령은 반사이익을 전혀 못 얻고 있다. 여권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의혹들을 처음 제기했던 6월에도 지지율 반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여론이 여기에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장의 지적이다.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국민 입장에선 유권자로서 문재인과 민주당 정부에 대해 세 번이나 심판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새 정부가 자꾸 문재인 정부 이야기를 하면 짜증 날 수밖에 없다. 국민은 민주당에도 2016년, 2017년, 2018년, 2020년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연속 표를 줬지만 ‘잘못한다’ 싶으니까 심판해버렸다. 과거 이야기는 그만하고 내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기조로 가야 한다.”

핵심 가치가 흔들리면 핵심 지지층도 이탈한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등 여러 개혁 과제에서 보수 정부다운 이렇다 할 방향성이 보이지 않아 보수층의 지지세도 빠져나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 부울경의 지지율 하락이 이를 나타낸다. 특히 부울경의 경우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추락한 것은 심각한 경고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하을)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공정 아닌가. 이 트레이드마크가 빨리 회복돼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그걸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대통령이 좀 더 공정한 모습,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이전 정부와 똑같이 해버리면 명분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조금만 참자’는 메시지가 없다”

결국 ‘진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경제 상황에 특히 예민한 자영업자층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30%대까지 하락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환경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월 20일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빈부격차·자산격차가 더 커진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며 “두 달밖에 안 된 윤석열 정부 잘못으로 경제·민생 위기가 왔다고 (야당이) 지적하는 건 그야말로 ‘내로남불’식 태도”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의 이러한 반박은 논리적으로 타당할 수 있지만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경제 정책에서 이전과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단시일 안에 해결할 수 없는 경제문제일수록,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민간이 활력을 갖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취임사는 참 좋았는데, 그 부분이 정책적으로는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 경제 상황은 외부의 영향이 더 커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취임사는 뜨거웠는데, 실제 정책은 미지근해진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최광웅 원장은 이렇게 조언했다. “60세 이상 연령층에서도 지지율이 빠지는 이유는 물가가 높아져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여론 때문이다. 자영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경제 상황은 치명적인 수준까지 심각해졌는데, 정부는 엉뚱한 일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수록 고통 분담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진지한 자세로 ‘조금만 참자, 힘내자’는 메시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참모가 보이질 않는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 덕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협력이 가장 절실한 대통령이다. 170석 이상의 야권을 상대해야 한다. 야당과의 소통은 물밑에서 치열하게 정치력을 발휘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여당 지휘부와 대통령실 정무라인 참모들의 몫이다. 하지만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전혀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자성이 당내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선 이진복 정무수석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주변에 정치인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주변에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 출신 참모들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배경으로 “대통령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을 이유로 꼽는 시각도 있다. 검사는 물론 법률가 출신들은 중용하지만 상대적으로 과거 정부에 비해서 정치인을 데려와 쓰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이면 여당답게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좋은 주제를 공유하고, 정부가 잘못할 땐 데이터를 통해 조언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 지도부가 그런 일들을 전혀 못 하고 있다”면서 “야당에 양보할 부분은 과감하게 양보하면서 원만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취임 초 지지율이 낮았던 노태우 정부 당시 125석이었던 여당(민주정의당)이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김대중의 평민당, 김영삼의 민주당과 사안별로 정책 연대를 했던 선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중 정부 역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의 협력을 통해 민생 입법을 다수 처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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