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6일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직무 정지 결정을 내리자 당 안팎에서는 향후 지도부 구성을 두고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당분간 여당 지도부 공백 사태는 불가피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이준석 대표 징계 이후 비대위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새 당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겠다는 당내 주류 세력의 구상도 불투명해졌다.
우선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대신해 여당을 누가 이끌지가 관심거리다. 당 법률지원단장인 유상범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원 가처분은 비대위원장만 직무 집행 정지했다”며 “비대위 발족과 비대위원 임명 등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이어 당대표 직무대행을 누가 맡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현 단계에서 해석하면 당대표 사고나 궐위에 관련된 규정을 준용해서 진행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이 대표의 징계 직후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이 돼 기존에 임명된 비대위원들과 함께 비대위를 운영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직무집행이 정지된 주 위원장이 임명한 비대위원 역시 무효로 봐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비대위원을 상대로 또다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경우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나온다. ‘주호영 비대위’를 유지하려 할 경우 정당성이 결여되고 더 큰 혼란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 이전 역할인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최고위 체제의 부활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인 출신 한 의원은 “비대위 출범 전 사퇴한 최고위원들의 빈자리를 전국위원회에서 다시 선출해 최고위원회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이 현재 당 상황을 비대위 설치 요건인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만큼, 공석이 생긴 최고위원을 다시 뽑아 최고위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법원에 낸 이의신청 또는 항고 결정이 나올 때까지 (최고위 전환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법률 자문 의견이 있다”고 했다.
권성동 대행 체제 가능성이 크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권 원내대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권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하고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해 그에게 비대위나 최고위에 대한 지휘권을 넘기자는 구상이다. 한 중진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27일 의원총회에서 사의를 밝히고 ‘새 원내대표가 뽑히기 전까지만 사태 수습을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며 “’내부 총질’ 문자 노출 등 당 내홍을 격화시킨 장본인에다 가처분 인용까지 됐는데 이제는 그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권성동 대행체제든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든지 이 대표가 징계기간 종료 후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석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에서 제명 같은 추가 징계를 받거나 성 상납 관련 수사와 기소로 당대표직을 박탈당하면 자연스럽게 새 당대표를 선출하면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 측 인사는 “지금 상황에서 윤리위나 경찰이 급하게 어떤 결과를 내놓으면 윤심(尹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가 이번 법원 결정으로 어느 정도 명분을 얻었기 때문에 당에 활로를 열어준다는 의미로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법원이나 경찰, 당 윤리위에 지도부의 운명을 맡길 것이 아니라, 이 대표가 자진 사퇴하거나 기존 최고위원이 총사퇴해 새 지도부를 꾸리는 식의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윤 대통령 측근들이 나서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양측의 불신과 감정의 골이 깊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