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 9월 29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무능한 정치를 바꾸려면’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 차기 당권 경쟁에서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현재 당권 도전이 예상되는 후보는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주호영·김기현·윤상현 의원 등이다.

특히 대구·경북(TK) 지역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이 1위를 차지한 결과가 지난 10월 10일 발표되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영남일보·KBS대구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대구시민과 경북도민 1608명(각각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는 유승민(23.5%), 나경원(15.9%), 안철수(15.8%), 주호영(13.6%)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국민의힘 지지층만을 놓고 보면 나경원(23%), 주호영(19%), 안철수(17.9%), 유승민(12.6%) 순이었다. 조사 결과는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체는 1위, 국힘 지지층선 꼴찌

사실 유승민 전 의원이 전체 지지도로는 1위이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추세는 그간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돼 왔다. 국민의힘 지지층만 대상으로 하면 나경원 전 의원이 1위를 차지하는 것도 거의 굳어진 추세다. 이번 조사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TK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 정도다. 이 지역에서 유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유 전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해석이 많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여론이 유 전 의원 인기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윤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실제 유 전 의원은 작정하고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야당 못지않은 날 선 비판일 경우가 많다. 지난 10월 11일에는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비판하며 “당장 망언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는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대표 선거는 기본적으로 당원들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원층에서의 낮은 지지율이 보여주듯 유승민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당원들도 적다. 경기지역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유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원은 별로 없다”며 “오히려 ‘배신자 프레임’만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1~2월로 예상되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유 전 의원이 대표로 당선되기 쉽지 않은 것은 국민의힘 당헌·당규가 당원 투표 7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 30%로 대표를 뽑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다른 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 ‘역선택’ 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나경원 전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역선택이라는 표현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작년 전대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뒀다”며 “작년 서울시장 경선 때는 100% 여론조사 경선을 하면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안 뒀다. 그래서 민주당이 선택한 우리 당의 시장 후보가 당선이 된 형국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조사는 항상 제가 1등”이라며 당심에서는 자신이 앞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나 전 의원의 발언은 전당대회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보수신당 창당은 쉽지 않을 듯

나아가 ‘이준석 리스크’를 정리하고 정상궤도에 진입한 정진석 비대위가 전국 당원협의회 재정비에 나서는 것도 유 전 의원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국민의힘 ‘사고 당협’ 숫자는 67곳에 이른다. 2024년 총선을 생각해서라도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감 종료 후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친윤 색깔이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 결국 친윤 색채가 강화된 상황에서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유 전 의원으로서는 더욱 불리해질 전망이다.

만일 유 전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당심을 얻지 못하면 탈당해서 창당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지난 8월 유 전 의원이 이준석 전 대표와 보수신당을 창당하면 국민의힘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당시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2.5%가 보수신당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29.8%에 그쳤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이미 바른미래당을 만들어 돈과 조직이 없는 창당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한 유 전 의원이 쉽게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준석 전 대표도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추가 징계를 받은 후 “어느 누구도 탈당하지 말라”며 자기 발로 나가지는 않을 것임을 밝혔다. 바른미래당 출신으로 유 전 의원과 친분이 있었던 한 정치인은 과거 창당 당시의 유 전 의원에 대해 “이런저런 부탁이 와서 도왔는데, (유 전 의원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하지 않아 서운했다”며 “자기 사람 챙기는 데 인색한 성격으로 설사 탈당해도 함께할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반대로 유 전 의원의 보수 신당 가능성을 크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개혁 보수를 내세우고 창당하면 총선 비례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20대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과 비슷한 돌풍도 가능하다”고 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호남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국 비례대표 득표율 2위를 기록하며 원내 3당이 된 바 있다.

유 전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지 않아도 2024년 총선에서 기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만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그때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유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때까지 장외 투쟁을 이어가면서 새 정치를 하겠다는 명분을 쌓고, 총선에서 물갈이 혹은 혁신을 내세우며 다시 전면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고 그 공이 유 전 의원에게 돌아간다면 차기 대권 도전도 가능해진다. 다만 재기를 위해서는 유 전 의원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벌써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TK 주도권이 커지면서 운신 폭이 줄어들고 있다. 또 “자기 사람 챙기는 것에 인색하다” “혼자만 잘났다”는 정치권의 기존 평가를 잠재우는 것도 필요하다. 유 전 의원에 대해서는 서울대 경제학부, 위스콘신대 박사, KDI 연구위원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는 자부심은 좋으나 결벽증에 가까울 때가 많아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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