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일 국회에서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하고 포즈를 취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남강호 기자

나경원 전 의원의 3·8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으로 ‘대진표’가 거의 확정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예상대로 ‘윤심’이 판을 결정하는 구도로 가고 있다.

지난 1월 25일 나 전 의원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날 나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이례적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출마선언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였고, 출마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굳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는 자리를 만들겠느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예상과 달리 불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했고 대중 정치인으로서 사라질지 모를 위험한 선택을 했다.

이날 불출마 선언은 당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후보 지지율 3위가 굳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추진력은 ‘여론조사 1등’이었다.

사실 나 전 의원은 설 연휴 이전만 해도 광화문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참모진 구성에도 나설 정도로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은 대세론이 흔들린 1월 1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였다. 이때부터 김기현 의원에게 밀리는 결과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밝히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나경원 불출마 선언 배경에 도사린 것들

이후 악재는 계속됐다. 갑자기 신당동 빌딩 투기 의혹도 불거졌다. 나 전 의원은 1년 만에 ‘원가수준’에서 매각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사실관계를 떠나 출마를 강행할 경우 만만치 않은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초 나 전 의원은 ‘친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자신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듯하다. 대학 동문으로 같은 고시원에서 공부까지 한 과거의 인연도 이런 인식에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나 전 의원과의 거리는 예상보다 컸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 오른 직후라는 얘기가 많다. 당시 민주당 정권에서 야당 원내대표직을 맡고 있던 나 전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고 이것이 윤 대통령을 서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윤 대통령이 정계 진출을 선언할 때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한발 물러난 것 역시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킨 이회창 전 총재의 몰락을 지켜본 나 전 의원으로서는 나름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볼 수 있지만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알아서’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을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극도로 서운했을 수 있다.

나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는 전국을 돌며 적극적으로 지원 유세를 펼쳤지만 이 역시 ‘약발’이 크지 못했다.대선 기간 충북도지사와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계속 언론에 거론되면서 ‘자기 자리만 챙기는 사람’으로 비친 탓이다. 본인으로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공은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들 수도 있지만 나 전 의원은 그래도 당대표가 돼 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우면 지난 감정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실제 나 전 의원 측근들 사이에서는 “대표 당선 이후 총선 공천을 ‘윤핵관’에게 넘기고 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우면 무난히 당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의 감정의 골은 나 전 의원의 생각보다 깊었다. 나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윤 대통령과 사이가 좋아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나 전 의원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길 때부터 나 전 의원이 당대표를 포기한 것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이 이후에도 당대표 출마에 대해 계속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신의칙 위반으로 여겼을 수 있다. 물론 나 전 의원은 불출마를 약속한 적이 없었다. 나 전 의원 측근들은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대통령이 전화라도 한번 걸어줬다면 체면도 살고 서울시장 출마 등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얘기한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더 멀어져버렸고 이제 여의도에서는 나 전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나 전 의원이 낙마하면서 이제 국민의힘 전당대회 구도는 김기현, 안철수 양강 대결이 굳건해졌다. 두 사람 모두 각각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 안 의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윤심’일 수 있다. 과연 윤 대통령이 ‘차기 대선주자가 당대표가 되는 것을 원할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당대표는 차기 총선 공천을 주도하는 자리여서 안철수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자연스럽게 국민의힘은 ‘안철수당’이 될지 모른다.

‘윤심’의 향방은 ‘과연 윤 대통령이 안 의원에게 미안하거나 빚이 있다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면 나올지 모른다. 결국 지난 대선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담판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여의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만일 단일화 당시 국민의당 선거비를 국민의힘이 떠안지 않고, 안 의원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했다면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마음의 빚이 남았을 것이다.” 합당으로 국민의당 선거비를 국민의힘이 떠안게 되면서 윤 대통령으로서는 부채가 없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공동 정부’라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배려가 없는 배경 역시 선거비 보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안 의원으로서는 ‘윤심’에서 멀어진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 과제일 수 있다.

안철수·김기현의 한계

김기현 의원의 경우 ‘당대표 당선 이후 정당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으면 과연 다음 총선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떨쳐내야 한다. 요즈음 많이 이야기되는 ‘수도권 대표론’의 연장선이다. 전국적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현 여론조사 결과가 당원 투표까지 연결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국민의힘 80만 당원 중 절반은 과거 이준석 당대표 시절 늘어났다. 이 전 대표는 유독 당원 확장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들 신입 당원 중 상당수가 ‘친윤’에 부정적일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했으나, 오랜 기간 ‘배신자’ 프레임으로 보수층에서는 고전해 온 유승민 전 의원이 ‘반윤’의 구심점으로 등장할 경우 선거판 자체가 ‘친윤’ 대 ‘반윤’ 구도로 바뀔 수 있다. 결선투표까지 올라가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일단 존재감을 알리면서 차기 대선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된다. 다만 특유의 ‘결벽증’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누구의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리고 조직을 만들지도 않아 실제 당내에 ‘유승민 세력’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경기지사 경선에 나가면서도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치는 떠나고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 지내겠다”고 했는데 실제 현실도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직 유승민 전 의원이 정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지난 경기지사 경선에서 ‘윤심’의 개입으로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유승민 전 의원이 이번에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등판을 결정한다면 ‘윤석열 저격수’가 되겠다는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당대표에 출마했다가 그 결과가 초라할 경우 얻을 것이 없기에 막판까지 고민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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