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판결로 어려워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일본 측에 손을 내미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3월 21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이뤄진 한·일 국교 정상화 노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1965년 한·일협정을 이야기한 것은 큰 시야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보자는 취지로 읽힌다.
유의상 광운대 겸임교수는 외교부 동북아1과장(일본담당), 국제표기명칭대사 등을 지낸 ‘일본통’으로 한·일 과거사가 연구 주제다. 최근에는 한국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한·일회담(1951~1965년)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한 ‘한·일 과거사 문제의 어제와 오늘’을 출간했다.
지난 3월 21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만난 유 교수는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윤 대통령의 이번 해법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진 용기 있는 결단”이라면서도 “기시다 총리의 국내 정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4월 일본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방일 일정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진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정치적 위험 요소를 무릅쓴 지도자의 용단'이나 중재위원회 회부 이외에는 달리 해결방안이 없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측 조치에 대한 일본의 화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시다 총리의 국내 정치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일본 측의 미진한 대응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따라서 4월로 예정된 일본의 통일지방선거 결과를 봐가면서 방일 일정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유 교수는 “결단에 앞서 과거사 문제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며 이런 지적도 했다. “그간 과거사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한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 피해의식 또는 기억’ 때문인데, 일본 측의 적절한 대응조치(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사과나 사죄) 없이 우리 자체적으로 이 ‘집단적 기억’에서 벗어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정상회담 내용을 언론에 흘리거나 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데 더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일본 측이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나오지는 않을까. "돌이켜보면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는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기간이 과거에 비해 너무 길었다. 어쩔 수 없이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단숨에 해버리려고 하거나 너무 서두르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통일지방선거에서 (윤 대통령의 조치로 기시다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급속도로 상승해서) 자민당이 승리하면 조금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측 조치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금에 참여할 것이라고 보나. "일본 기업들은 정부가 내지 말라면 내지 않고 내라고 하면 기금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 결국 일본 정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도 지금은 정부의 권유를 적극 따르겠지만, 문제는 후일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여러 고위직 공무원이 직권남용으로 구속된 '미르재단'의 예가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차라리 국민에 대한 설득 노력을 조금 더 기울인 후 정부 예산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정당성도 있다."
- 이미 우리 정부가 몇 차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지 않았나. "우리 정부는 그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보상 또는 지원을 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 정부 스스로가 보상하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것이다. 그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사망자와 부상자에 집중되었다. 강제동원되었다가 무사히 귀환한 분들은 1년에 80만원 정도 의료비만을 지원받고 있다. 이분들 입장에서는 전혀 보상을 받은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 피해자들이 대법원까지 가서 피해를 보상해 달라고 한 것이다. 진작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해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번 조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재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 외에 생존 귀환한 강제동원 피해자(2023년 1월 말 현재 1264명으로 집계)나 유족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조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다고 생각하나. "일본은 한·일회담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를 표명한 적이 없다. 이는 전후 국제질서가 미국, 영국 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주도했던 국가들에 의해 형성된 탓도 있다. 일본은 1990년대 들어서야 호소카와 총리, 무라야마 총리가 과거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했다. 이들은 일본 정치의 주류인 자민당 출신이 아니다. 요즘 자주 거론되고 있는 1998년 10월의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간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선언이 자민당 정부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 학계에서는 전쟁 책임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은 거의 거론된 적이 없다. 요즈음에 와서야 일본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 책임론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 일본 측은 이미 사과를 수차례 했고 현 정부 역시 그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 아닌가. "일본 측은 식민지 지배에 따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과를 30번 넘게 했다고 하는데, 포괄적으로 넓게 하는 사과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사과는 차이가 크다고 본다. 이번에 일본 측은 역대 내각의 담화 내용을 모두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사죄'와 같은 구체적인 문구를 인용하지는 않았다. 다소 지나친 경계심일 수 있으나 역대 내각의 담화에는 아베 총리의 담화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일본이 나중에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결국 지난 한·일협정은 미국의 압력 혹은 중재를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한·일협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는 전제가 배제된 상태에서 체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교섭 상대였던 일본이 그러한 인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이를 협정에 반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일협정에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담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일회담을 주선한 미국은 한·일 양국이 협정 체결을 통해 조속히 국교 정상화를 함으로써 미국이 구상했던 동아시아에서의 공산 세력 방어망 구축을 조기에 완성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일본이 동의하지 않는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한국이 거론함으로써 회담 진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미국의 생각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전달되었다."
- 한·일회담에서 강제동원 문제는 어떻게 논의되었나. "일본과의 청구권 문제 교섭 과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 문제는 회담 시작 때부터 협정이 체결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매우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졌다. 1961년 5월 10일 개최된 제5차 회담 청구권위원회 제13차 회의 석상에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양국 간에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대표단은 외무부의 훈령을 받아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 '한국에서는 길 가는 사람을 붙들어 트럭에 실어서 탄광에 보냈다'와 같은 발언을 통해 일본 측의 강제동원이 부당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주장했다. 일본 측이 일본 원호법을 원용하여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자, 한국 측은 '우리는 나라로서 청구한다. 개인에 대하여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라면서 일본 측에 일괄적인 보상금 지불을 요구했다. 강제동원 피해 문제와 비교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회담에서 미수금 차원에서 단 한 차례 거론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본 측이 2015년 12월 한국 측과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고도 볼 수 있다."
-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하지만, 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사과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인가. "'위안부'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한·일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고, 일본으로서도 국제사회에서 여성의 보편적 인권이나 전시 성폭력에 해당하는 이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2015년 12월 사과와 함께 10억엔의 정부 예산을 거출하는 방식으로 한국 측과 합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강제동원에 대해서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고,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사과는 물론이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도 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한 생각은. "한·일 간의 경제적 중요성은 과거보다는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경제가 많이 발전하면서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가 축소되었고 일본 의존도도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안보적 측면에서 양국 관계를 봐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염두에 둔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한·일 간 협력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라는 덩치가 큰 국가 옆에 우리와 일본이 있는데, 우리 혼자 중국을 상대하기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일본과 가깝게 지내면 중국에 대한 발언권이 더욱 세질 수 있다."
- 과거사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방안은. “양국 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양국 관계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다. 양국 간 경제력의 격차 축소로 인해 과거에는 ‘상호 보완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상호 경쟁적’인 관계로 변모했다. 양국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세대교체 또한 양국 관계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과거에는 어떤 사안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어려워지면 인맥과 강한 유대감으로 연결되었던 원로들의 물밑 교섭을 통해 관계를 복원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시대에 한국이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를 건설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지향에서 탈피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가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양국의 문화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적·문화적 교류는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