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대구 동구 팔공총림 동화사를 방문해 통일대불 앞에서 합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사면 및 복권된 후 대구 달성군 사저에서 칩거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첫 공개 외출을 한 날은 공교롭게도 총선을 1년 앞둔 지난 4월 11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찾은 장소도 TK 정치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동화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동화사에서 별다른 정치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동화사 큰스님이 덕담 중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 실세 하신 게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수십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그냥 비선 실세”라고 말하자 표정이 굳어졌다. 큰스님의 이런 발언은 여전히 그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TK 민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날 동화사 방문은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이란 점에서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전 의원이나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 변호사,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의 출마설과 맞물려 친박이 내년 총선을 통해 명예회복을 도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세 사람은 총선에 출마할 결심을 어느 정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경산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최 전 부총리의 경우 지난해 연말 복권이 이뤄져 내년 총선 출마가 가능하다. 이미 지난달 말 경산 지역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지지자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경환, 우병우, 유영하 출마 기정사실화

우 변호사는 최근 검찰 재직 시절 가깝게 지냈던 법조 출입기자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는 유 변호사는 지난해 대구시장과 수성을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무산됐다. 최근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을 주선하면서 이를 언론에 먼저 알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다른 측근들은 이번 해프닝에 유 변호사의 정치적 욕심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친박계로 불리던 한 중진 정치인은 “확정도 안 된 만남 같은 것을 언론 플레이부터 해놓고 그다음에 추진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좀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TK 지역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본심이 어디 있든 세 사람이 출마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은 다시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현실정치의 세계로 소환될 수밖에 없다. 이런 친박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TK 지역민들의 민심도 엇갈리고 있다. 주간조선이 만난 TK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세 사람의 출마설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78세 전모씨는 “박 전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는데 정치에 또 관심이 있겠느냐”며 “괜히 정치랑 엮지 말고 편히 살게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구 북구의 70대 여성은 “(대구에서) 나이 든 사람 중에 박 전 대통령 안 좋아하는 사람 없다”며 “친박계 후보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면 다들 찍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거나, 박 전 대통령 본인이 직접 이들을 지지할 가능성은 다소 낮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앞서 언급한 친박계 중진 정치인은 “박 전 대통령이 나서면 보수가 결집하겠지만,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보수가 민주당을 찍을 리는 없다고 본다”며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친박계이니까’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급적이면 당사자들이 박 전 대통령과 연관을 안 짓고 각자의 역량으로 당선되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의미 없어… 각자 역량으로 해야”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친박계 중에서는 친윤계에 끼워달라고 하는 ‘친윤계 호소인’도 있다”며 “괜히 친박계가 뭉친다고 하다가 윤핵관에게 찍히면 공천에 불리할 수도 있어서 양쪽(친박계, 친윤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계가 스스로 세력을 형성하기보다는 오히려 현 집권 세력이 박 전 대통령을 활용하는 것이 더 실현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최근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유영하 변호사 등과 박 전 대통령 예방을 논의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서로 물밑 탐색전을 벌이는 수준이라는 것이 정치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종훈 평론가는 이번 김 대표의 예방이 연기된 것에 대해 “TK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 했다가 멈칫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 구 친박계를 챙겨야 하는 등의 리스크가 있어 (아직은)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더 떨어지거나 친윤계에 의한 공천 학살이 벌어져 친박계가 위기감을 느끼면 결집할 수도 있다”며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굉장히 유동적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TK 지역을 중심으로 친박계 신당 창당설까지 나온다. 대구 지역 한 정치권 관계자는 “친박계가 신당을 창당하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라며 “대구 지역의 윤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한 상태에서 공천 전횡이 예상되거나 정당이 보수층의 여러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면 (신당이) 생길 수 있지만 잘못하면 보수 궤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짚었다.

결국 변수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냐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 변호사의 후원회장을 맡고 공개적인 지지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다 이루지 못했지만, 제 고향이자 유영하 후보의 고향인 이곳 대구에서 유 후보가 저를 대신해 이뤄줄 것으로 믿고 있다”며 직접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구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TK 지역에서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노인분들은 많지만 (박 전 대통령이 나온다고) 젊은 층을 비롯해 전반적인 보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며 “유 변호사를 대구시장 후보로 만들어달라고 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인 지지 선언을 했지만 안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첫 공개 행보는 스스로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단순히 자신이 아끼는 유 변호사를 국회의원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유 변호사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냈던 만큼 박 전 대통령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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