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드릴 테니 8시간 일해주세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문을 연 ‘평산책방’이 열정페이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소득 주도 성장’을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던 문 전 대통령이 정작 자신의 책방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자를 대거 모집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책방 수익을 공익사업에 쓰는 것보다 사람을 고용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큰 공익사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산책방은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평산책방 자원봉사자 모집’ 글을 올렸다.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종일 8시간 자원봉사할 사람 50명을 선착순으로 구한다는 내용이다. 평산책방은 활동 혜택으로는 “평산책방 굿즈, 점심식사 및 간식 제공”이라고 했다. 점심 식사는 종일 봉사자만 제공한다고 한다. 8시간 자원봉사자로 책방을 지켜야 무료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으려는 ‘열정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커피숍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집권 초반 2년간 최저임금을 각각 16.4%, 10.9% 인상한 바 있다. 그런 문 전 대통령이 연 책방이 무급 자원봉사자를 공개 모집하고 나서자 온라인에서는 “평산책방 노예모집” “기업들 서포터즈 열정페이라고 뭐라 하더니 왜 열정페이하세요? 최저임금 주고 부려먹으세요” 등의 말도 나왔다.
한 친문계 인사는 본지에 “문 전 대통령을 좋아하셔서 진심으로 자원봉사를 하시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따로 공고를 낸 것인데 그게 어떻게 열정페이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산책방은 7일 오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원봉사자 모집 마감합니다. 너무 많은 관심과 신청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선착순 마감이 끝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재단법인 평산책방을 통해 세금 지출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수익사업을 벌인 뒤 정치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경율 회계사는 “판매 물품이 책이라 부가가치세를 안 내고, 문화예술 창달에 공헌하는 공익법인이라는 이유로 법인세를 안 낸다”며 “세금으로 단 한 푼 안나가고 자신들이 목적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는 치졸한 구성”이라고 7일 본지에 말했다. 김 회계사는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유시민 작가와 3000만원짜리 ‘도서문화 창달에 대한 보고서 작성 용역’ 계약을 맺고 책 팔아서 번 돈을 줘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있는 평산책방은 지난달 26일 개점했다. 평산책방은 앞서 지난 3일 개점 이후 일주일 동안 “약 1만여명의 방문객이 책방을 찾아주셨고, 5582권의 책이 판매됐다”고 전했다. 오전이나 오후 때 책방지기로 나서는 문 전 대통령은 앞치마를 걸치고 계산도 하고 사진 촬영 요청에도 응한다.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지난달 28일 트위터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사진을 공유하며 “책방지기! 여지껏 그 많았던 직함 중 가장 어울리는 이름임엔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