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비를 들여 지난 4월 26일 개점한 ‘평산책방’이 첫 주말을 맞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저가 위치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었다. 오픈 닷새째인 4월 30일 일요일 오전 9시30분에는 이미 30명 정도가 줄을 서고 있었다. 맨 앞에 선 손님은 서울에서 운전해 오전 9시에 도착했다고 했다.
9시35분이 되자 책방 관계자가 차에서 새싹 화분을 꺼내 책방 안으로 옮겼다. 평산책방은 ‘책을 사면 하루 100명에게 선착순으로 새싹을 증정한다’고 소셜미디어(SNS)에 공지한 바 있다. 이날 준비된 새싹은 완두콩과 상추였다.
10시 정각에 책방 대문이 열렸다. 책방에 들어가려면 돌계단을 올라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야 했다. 평산책방에는 문 전 대통령이 기증한 1000여권을 포함해 3000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책방에 들어서니 정면에 ‘문재인이 추천합니다’와 ‘문재인의 책’ 코너가 눈에 띄었다. ‘문재인이 추천합니다’ 책장에는 문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서평을 남겼던 ‘짱깨주의의 탄생’ ‘차이에 관한 생각’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시민의 한국사’ ‘지극히 사적인 네팔’ 등이 모여 있었다. ‘문재인의 책’ 코너에는 ‘문재인의 약속’ ‘운명’ ‘운명에서 희망으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등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다뤘거나, 그가 쓴 책이 놓여 있었다. 두 책장 앞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렸다.
책방은 지상 1층 건물에 연면적 142.8㎡ (43.1평) 규모다. 한가운데에는 평대 두 개가 자리했다. 입구와 가까운 평대의 반을 ‘책 읽는 사람-문재인의 독서노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추천한 70여권의 서평을 담은 책이다. 평산책방에서만 판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한 권씩 집어갔다. 100권 넘게 놓여 있었는데도 금방 빠졌다. 직원들이 평대 아래에 꽂힌 책을 꺼내 계속 평대 위에 쌓았다. 이외에도 ‘아버지의 해방일지’ ‘조국의 법고전 산책’ ‘미스터 프레지던트’ ‘유시민과 도올 통일, 청춘을 말하다’ ‘친일파 열전’ 등이 평대에 놓여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소장한 책 1000권을 비치한 ‘평산작은도서관’은 책방 가장 안쪽에 작은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책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붙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을 비롯해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 ‘너와 나의 5·18’ ‘평등이 답이다’ 등이 꽂혀 있었다. 한 책장 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보낸 화환도 놓여 있었다.
책방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구경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림책, 시, 사회과학, 자연과학, 인문, 에세이, 소설 등의 코너도 마련돼 있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그림책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달님 안녕’ ‘때’ ‘모모모모모’ 등의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낮은 책장 위에 전시됐다.
책방 근처를 기웃거리던 손님들은 책방 관계자에게 “대통령님 안에 계시느냐” “언제 오시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오전 11시쯤 누군가 마을회관 근처 골목에서 “대통령 내려오신다”고 말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문 전 대통령은 줄 서 있는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천천히 책방 쪽으로 걸어왔다. 와인색 셔츠에 단추 하나를 풀고, 짙은색 청바지에 갈색 단화를 신은 모습이었다. 3명의 경호원이 그의 주변을 지켰다. 문 전 대통령의 양산행에 동행한 것으로 알려진 박성우 전 연설비서관실 행정관과 오종식 전 기획비서관도 함께였다. 지지자들은 “건강하세요” “잘 지내시죠?” “사랑합니다” 등을 외치면서 문 전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문 전 대통령이 책방 안으로 들어와 앞치마를 동여매고 계산대에 선 시각은 11시7분이었다. 구매할 책을 고른 사람들이 순서대로 계산대 앞에 섰다. 책방 직원이 옆에서 책을 쇼핑백에 넣는 등 일손을 도왔다. 그동안 손님들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문 전 대통령 옆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문 전 대통령은 구매 영수증을 직접 손님에게 건넸다. 사진을 찍은 후 카드나 영수증을 깜박 잊고 받아가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문 전 대통령이 그들을 불러 세워 영수증을 내밀었다. “잠깐만요, (앞사람) 결제 먼저 해주시고요”라거나 카드를 꽂은 후 “서명하셔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낮 12시2분이 되자 박 전 행정관이 ‘식사하러 가야 한다’고 전했다.
하루 방문객 2500명, 30명만 입장 가능
문 전 대통령은 바깥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더니 “12시 반까지 책방 일을 더 하겠다”고 말했다. 책방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신이 나 들어왔다. 검은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와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엄마 조모(41)씨가 문 전 대통령 오전 근무 중 맞은 마지막 손님이었다. 아이는 문 전 대통령 품에 안겨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씨는 “로또 맞은 것처럼 너무 기분이 좋다”며 “저희 애랑 좋은 추억을 남겨서 올 한 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이 떠나고 나서도 방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자원봉사자가 문 앞에서 적정 인원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관리했다. 목요일에 이어 또 봉사하러 왔다는 장모(50)씨는 “책방 안에 30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손님들은 문 앞에 걸린 평산책방 로고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책방 운영은 안도현 시인이 이사장을 맡은 ‘재단법인 평산책방’과 마을 주민이 참여한 책방운영위원회가 맡는다고 알려졌다. 신훈정 평산책방 사무처장은 “노무현재단에 구축된 (자원봉사) 시스템이 있어서 거기서 자원봉사자들이 왔다”며 “앞으로 마을 주민들과 자원봉사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방이 생긴 이후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갈렸다. 책방 맞은편에 사는 이모(85)씨는 “책방이 생기고 마을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며 “원래는 공기도 좋고 조용한 동네였는데 요즘은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다”고 말했다. 반대로 책방 1호 손님인 신한균(63)씨는 “책방이 생긴 이후로 동네에 활력이 생겼다”고 전했다.
오후 5시5분쯤에 책방 관계자가 ‘문 전 대통령이 곧 온다’고 다시 알렸다. 오전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김정숙 여사가 동행했다. 책방에는 5시30분에 들어왔다. 김 여사는 책에 구매 도장을 찍고 쇼핑백에 책을 담는 일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구매 내역을 확인하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김 여사는 손님에게 “친구분이세요?”라고 묻거나 어린이에게 “이름이 뭐니?”라고 말을 걸었다. 또한 “책방에 없는 책은 부탁하면 가져다 드려요”라거나 “조카가 돈 썼네” 등의 대화를 시도했다. 사인을 요청하는 손님에겐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대신 사진 찍자”고 말하기도 했다. “조카가 돈 썼네”라는 말을 들은 이모(35)씨는 “우연히 대통령님과 여사님을 같이 봬서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고 전했다.
책방이 문을 닫는 6시가 됐는데도 방문객 줄은 마을회관까지 이어졌다. 문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온 손님은 다 받아야 한다”며 더 들어오라고 했다. 7시가 넘어서야 줄 서 있던 모든 사람이 책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책방이 문을 닫은 시각은 오후 7시20분이었다. 신 사무처장은 “오늘 하루 2500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앞치마를 벗고 나온 문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책방 밖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워요”라고 인사했다. 책방 대문 바깥에서 기다리던 열댓 명의 지지자들이 두 사람을 반겼다. 어느덧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오전과 오후를 합쳐 문 전 대통령이 일한 시간은 총 3시간18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