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정부는 24일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주최하거나,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를 불허 또는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민노총이 지난 16~17일 불법적인 1박 2일 노숙 시위를 하며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출퇴근길 교통을 마비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당정이 함께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 방안”이라고 반발했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고 0시~오전 6시 시간대 집회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현행 집회·시위법(집시법)을 지난 정부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해 불법 집회·시위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집시법은 공공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하거나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야 시간대 집회 금지는 과반 의석의 야당과 협의가 필요한 입법 사항이지만, 나머지 개선 방안은 현행법을 제대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국민의힘은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국민들께서는 지난 대선에서 ‘불법 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방치하는 정부’와 ‘불법 집회를 단호히 막고 책임을 묻는 정부’ 중에서 후자를 선택했다”며 “국민들께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한다”고 했다. 향후 야권과 노조의 반발에 맞서 당정이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이날 당정이 추진하는 시위 문화 개선 방안에 대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생 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나라 안보가 백척간두인데 지금 한가하게 집시법 개정을 논할 때냐”며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정이 이날 발표한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이 적용되면, 경찰은 집회를 신고한 주최 단체의 불법 전력 여부를 확인해 불법 집회가 예상될 경우 금지 통고를 하게 된다.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파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安寧秩序)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도록 한 현행 집회시위법 5조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 협의 후 브리핑에서 “불법 전력이 있다고 무조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집회의 예상되는 모습 등을 볼 때 직접적으로 공공질서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경우 제한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도 신고 단계에서 제한될 수 있다. 이 역시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현행 집시법 12조를 근거로 한 것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마비시키는 일부 장애인 단체의 이른바 ‘휠체어 탑승 시위’도 금지나 제한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당정의 시위 문화 개선안을 두고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로부터 집회 금지 통고를 받는 단체들이 법원에 ‘금지 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수가 인용돼 집회를 예정대로 개최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이날 집회·시위 금지 시간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구체화한 집시법 개정안 추진에 대해서도 야당과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옥외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는 14년간 해당 조항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민노총의 노숙 시위 같은 일이 일어나도 공권력이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어떤 형태로든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당정의 논의 내용이 사실상 집회·시위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겠다는 것이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집회·시위가 다른 시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경우 이를 제한하자는 제안은 민주당에서도 나왔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작년 6월 집회·시위의 소음이나 진동,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집회 주최자가 특정 대상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조장·유발하는 행위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는 당시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를 막기 위해) 박광온 원내대표 등이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마저 민주당이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했다.